구 소련 정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가 1991년 11월 6일 공식 해체됐다. 앞서 8월 KGB 의장 블라디미르 크루츠코프가 반 고르바초프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 KGB 개혁은 사실상 예정된 거였다. 이후 KGB는 해외첩보총국 SVR와 국내방첩총국 FSB로 분열했고, 구 연방 지부들은 독립국 정보기관으로 재편됐다. 91년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당시 KGB의 연 예산은 83억달러(CIA 예산은 약 300억달러)였고, 국내외 공식 요원은 62만명에 달했다. 그 중 한 명이 동베를린 지부의 KGB 중령 푸틴이었다.
KGB의 역사는 1917년 10월 혁명 직후인 12월 20일 레닌의 지시로 출범한 ’체카, 반혁명 음모ㆍ공작 분쇄 국가특수위원회’에서 시작됐다. 볼셰비키 체제 수호와 공안을 책임진 체카는 산하에 20만명 병력의 군대까지 두고 정보와 치안, 즉 반혁명분자 색출-취조-처결 등을 주도하며 강제수용소(굴락)를 관리하던 공안권력기관이었다. 체카의 위세와 악명은 스탈린 치하에 극에 달했다. 그 사이 국가보안위원회(OGPU) – 내무인민위원회(NKVD)-국가안전부(NVD) 등을 거쳐 스탈린 사후 당시 위원장 라브렌티 베리야의 정보-내무 통합 내무성(MVD)으로 격상됐지만, 흐루쇼프에 의해 베리야가 실각ㆍ숙청되면서 54년 KGB 체제로 재편됐다. CIA가 본부 소재지인 버지니아의 ‘랭리(Langley)’로 불리듯, KGB도 주요 건물들이 있다는 모스크바 남서부 숲 지대 야세네보(Yasenevo)’를 빗대 그냥 ‘Les(숲)’로 불렸다고 한다.
푸틴 이전에, 브레즈네프 사후인 82년 안드로포프가 KGB 의장 출신으로서 최초로 서기장이 됐고, 후임 고르바초프 역시 스스로도 여러 차례 인정한 바 KGB의 지원 덕에 85년 권력을 장악했다. 크루츠코프의 쿠데타는 고르바초프의 KGB 배신, 즉 개혁을 요구했더니 해체를 기도한 데 대한 저항이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KGB는 해체됐지만, 푸틴의 부상으로 KGB의 정보권력은 전성기를 맞고 있다. ‘실로비키(제복의 무력집단)’로 분류되는 KGB 출신들의 약진과 더불어 옛 체질들이 FSB를 통해 고스란히 부활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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