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신성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고인을 추모하는 영화계 인사들을 비롯해 선후배 배우들이 앞다투어 장례식장을 찾았다. 최불암을 비롯해 후배 조인성과 선배 이순재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한국 영화계를 빛낸 배우 신성일은 4일 오전 2시 25분 폐암으로 타계했다. 향년 81세.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이날 빈소가 차려진 뒤 배우 박중훈과 송혜교, 노주현, 정준호를 비롯해 강우석 감독과 임권택 감독의 근조화환이 도착했다. 또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전주국제영화제, 수많은 협회들, 고인의 모교인 경북고등학교 등에서 화환을 보냈다.
원로 배우 최불암은 빈소가 차려지자마자,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배우 이동준과 문성근, 선우용녀 등도 도착해 고인을 애도했다. 이창동 감독과 정지영 감독 역시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찾았다.
이동준은 "배우 중에서 남달리 저를 예뻐해주셨다. 우스갯소리로 인터뷰를 하실 땐 '내 뒤를 이을 배우'라고 칭찬해주셨다"며 "제 아들 백일 때도 참석해주셨다. 늘 저를 보면 반갑게 대해주시던 어른이었다. 영화계의 큰 별이 가셨다.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방문한 이순재는 "(고인은) 한국영화가 획기적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한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성일 씨를 다 기억한다. 더 할 수 있었는데, 너무 일찍 갔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신성일에 대한 많은 자료가 있어 후학들에게 좋은 교본이 될 것"이라며 "고인은 한국 영화의 중흥에 최고 기여했다. 바쁠 때는 동시에 20작품 이상을 했다. 정말 애를 많이 쓴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본 지는 오래됐으나 그 때는 얼굴이 좋았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몇 번 보는 건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또한 후배 배우 조인성은 "생전에 한 번밖에 못 뵀다. 가시는 길 인사드리러 왔다"고 전했고, 현미는 "별들이 하나 하나 떨어진다는 느낌이다"라며 원로 배우들의 떠나는 길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내인 배우 엄앵란은 고인의 유언을 전하면서 존경심을 표해 깊은 감동을 자아냈다.
세상을 떠난 고 신성일의 본명은 강신영이며, 고(故)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예명 신성일로 활동했다.
1960년 신상옥 감독·김승호 주연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그는 1963년 한 해에만 '청춘교실' 등 21편에 출연했다. 1964년에는 '맨발의 청춘' 등 32편, 1965년 '흑맥' 등 34편, 1966년 '초우' 등 46편 영화에 출연했다. '안개' 등 51편 영화에 출연한 1967년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많은 영화에 출연한 해다.
1968년과 1990년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대종상영화제 공로상, 부일영화상 공로상 등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대구과학대학 방송연예과 겸임교수, 계명대 연극예술과 특임교수를 맡아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았고,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 인터뷰집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 등의 저서를 남겼다.
1981년 정계에도 진출했다.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서울 마포·용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러나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의정활동을 펼쳤다.
고 신성일의 발인은 오는 6일, 장지는 경북 영천이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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