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캠프 합류 제의받기도
4일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신성일씨는 스크린 밖 삶도 영화 같았다. 여러 배우와 교유하고 반목하며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정계에도 지인이 많아 한국 현대사의 주요 대목에서 조연 역할을 했다.
고인은 신상옥 감독의 발탁으로 배우가 됐지만, 신 감독 쪽으로부터 한때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신 감독이 운영하던 신필름 전속배우로 3년 동안 월급을 받았지만, 고인은 ‘아낌없이 주련다’(1962)에 출연하면서 신 감독의 품을 떠났다. 고인은 스타가 됐고, 이후 신 감독과 오해를 풀고 막역한 사이가 됐다.
인기 액션배우 박노식씨와 장동휘씨와는 악연이었다. 신인시절 경남 통영에서 ‘김약국의 딸들’(1962)을 찍을 때 숙소에서 술에 취한 박씨에게 구타를 당한 후 두 사람은 반목했다. 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 자리를 놓고 일합을 겨룬 장씨와는 평생을 불화했다. 고인은 악극단 출신 장씨를 선배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워낙 높다 보니 정계 입문 제의도 일찌감치 받았다. 1970년 9월 당시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김상현 의원과 함께 한밤중에 고인 자택을 찾아 대선 캠프 합류를 부탁했다. 고인은 당시 김 후보의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과 조예에 반해 지원을 약속했다. 김 의원은 1967년 고인이 영화 ‘강명화’ 야간 촬영을 할 때 포장마차와 주인을 통째로 빌려 촬영장을 찾을 정도로 돈독한 사이였다. 하지만 남편이 정치에 휘말려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걸 우려한 고인의 부인 엄앵란씨가 몰래 지인을 통해 만류하면서 고인의 김 후보 지원은 없던 일이 됐다.
‘철의 사나이’ 박태준 포항제철 전 회장과도 인연이 깊었다. 한국전쟁 당시 박 전 회장은 대구 육군대학에서 수학할 때 고인의 인교동 집에서 하숙을 했다. 박 전 회장이 교육을 마치고 부상으로 받은 ‘파카’ 만년필을 고인에게 선물로 줬다. 두 사람의 인연은 박 전 회장이 201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고인은 김종필 전 총리와도 바둑을 종종 두는 사이였다.
주영복 전 국방부 장관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으나 1980년대 절연했다. 주 전 장관이 1980년 초 식사를 하며 “(다음 대통령은) 전두환이가 된데이”라고 하자 고인은 “전두환이 되면 나라 망합니다”라고 대꾸했다가 어색한 사이가 됐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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