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의 낭군님’ 출연 이민지
“각설이 분장 땐 경쟁심도 발동
너무 웃겨 서로 얼굴 못 쳐다봐”
배우 이민지(30)보다 ‘끝녀’라는 이름이 먼저 떠오를지 모른다. 지난달 30일 인기리에 종방한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에서 홍심(남지현)의 ‘절친’ 끝녀 말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세자 이율(도경수)을 향해 “아쓰남(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남정네)”이라 부르고, 억지로 혼례를 치른 남편 구돌(김기두)에겐 “못 생겨도 듬직하다”며 ‘돌직구’를 날렸다. 수줍어하면서도 조근조근 할 말 하는 모습이 밉살스럽기보다 귀여웠다. 특히 가상의 마을 송주현을 배경으로 배우 이준혁 김기두 남지현 등과 함께 ‘국적불명’ 사투리를 써가며 펼친 코믹 연기는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
최근 서울 효자동에서 만난 이민지는 “이번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단 한 번도 차에서 대기한 적이 없었다”며 “사극 분장을 한 채로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다”고 화기애애했던 촬영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푹푹 찌던 올 여름 야외 촬영 때도 그늘에 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수다삼매경에 빠졌던 일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무더위도 잊을 만큼 촬영장 가는 길은 소풍처럼 즐거웠단다. 배우들의 의기투합 때문인지 ‘백일의 낭군님’은 시청률 10%를 넘기며 방송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온갖 음모가 도사리는 궁궐 안과 평온한 서민들의 일상을 그린 송주현 마을이 대비돼 보는 즐거움이 컸다.
100% 사전제작된 것도 한 몫 했다. 세자의 로맨스, 권선징악 등 그간의 퓨전사극에서 본 설정들이 넘쳐났지만, 완성도 높은 장면과 배우들의 내실 있는 연기가 그 틈을 매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민지도 더 코믹한 장면을 위해 동료들과 상의하는 시간이 많았다. 드라마에서 송주현 사람들이 각설이 분장을 할 때는 “경쟁심까지 발동”했다. “분장실에 들어가니 준혁 선배가 긴 가발을 쓰고 양쪽으로 땋았지 뭐에요. 그래서 저는 ‘산적스타일로 수염과 눈썹을 그려주세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기두 오빠가 이에 검은 칠을 하고 헤어 드라이기로 말리고 있더라고요. 서로 얼굴을 못 쳐다봤어요. 너무 웃겨서. 하하”
이민지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로 이름을 알렸다. 극중 주인공 덕선(혜리)의 친구 장미옥으로 출연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독립영화계에선 독보적인 존재다. 2009년 영화 ‘이십일세기 십구세’부터 무려 20여 편에 주연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트렌스젠더와 가출소녀 이야기를 담은 영화 ‘꿈의 제인’(2017)으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제5회 들꽃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독립영화계의 여신’이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민지는 손사래를 쳤다.
“‘독립영화계 여신’이요? 이제야 겨우 직업이 배우라고 말할 수 있는 걸요. 10년을 일했지만 이뤄놓은 게 별로 없어요. 여전히 선택을 받는 입장이고,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일용직 노동자 같은 마음이에요. 적어도 드라마나 영화 포스터에 제 얼굴이 나와야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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