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임금근로자 가운데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성을 누릴 수 있는 대기업 정규직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한 반면, 임시직의 정규직 전환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이처럼 심각한 노동시장 양극화가 청년ㆍ여성 고용 부진, 과도한 자영업 비중 등 국내 고용시장의 고질적 문제를 초래하며 우리 경제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4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 ‘우리나라 고용구조의 특징과 과제’(집필자 장근호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고용시장에서 시급히 개선돼야 할 구조적 문제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 △청년실업 증가 △여성 고용 부진 △과도한 자영업 비중 등 네 가지를 꼽았다.
이 가운데 핵심적 문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대기업·정규직 노동시장과 중소기업 또는 비정규직 노동시장으로 이원화됐고 양 시장의 근로조건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8월 기준 대기업 정규직(1차 노동시장)에 근무하는 종사자는 213만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11%에 불과했고, 비정규직 또는 중소기업(2차 노동시장) 근로자는 1,787만명으로 전체의 89%였다. 종업원 수(2016년 기준)를 따져봐도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 취업자는 14.3%에 그쳤다.
1, 2차 노동시장의 근로조건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1차 노동시장 종사자의 월평균 임금(398만원)은 2차 시장(255만원)의 1.8배였고, 평균 근로연수(12.2년) 역시 2차 시장(5.2년)의 2.3배였다. 1차 노동시장 소속 근로자는 국민연금(98.3%), 퇴직급여(99.5%), 상여금(96.1%) 수혜율이 모두 90% 중후반대인 데 비해, 2차 시장은 수혜율이 60%대 중후반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근로조건이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는 노동시장 내 ‘계층 상승 사다리’는 걷어치워진 형국이다. OECD 회원국 16곳을 대상으로 임시직 근로자가 3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을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22%로 16개국 중 최하위였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옮겨가기 위한 ‘가교’ 역할을 하기보다는 한번 종사하면 벗어나지 못하는 ‘함정’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청년 및 여성 고용 부진, 자영업 비대 등 노동시장의 다른 구조적 문제 역시 노동시장 양극화와 맞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해줄 대기업은 적고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은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청년층은 실업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취업에 매달리고, 중년층은 자영업을 택한다는 것이다. 여성 역시 결혼 및 출산을 전후로 경력단절을 겪고 재취업 기회 역시 2차 노동시장 위주로 제한되면서 남녀간 고용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보고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로 인해 소득 격차가 확대되는 것은 물론이고 노동생산성이 저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등 2차 노동시장에 소속되면 장기 근속이 어려워 노사 모두 근로자의 업무능력을 향상시킬 유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은이 우리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 요인으로 생산성 하락을 우선적으로 꼽아온 점을 감안하면, 결국 노동시장 양극화가 저성장을 초래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보고서는 노동시장의 근로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시급하다며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 도급거래 감시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및 생산성 제고 △업종별ㆍ지역별 교섭 등 비정규직 근로자 권익 보호 제도 마련 등을 제언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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