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27일 구속됨에 따라 이달 중순쯤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한 첫 기소가 예정돼 있는 가운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윗선 수사와 별개로 검찰 조사를 받은 전ㆍ현직 법관들의 사법처리 여부도 법원 안팎에선 예민한 문제다. 자칫하다간 사법시스템이 전례 없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십 명에 달하는 법관을 조사한 검찰로서도 추후 사법처리 방향을 놓고서도 고심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사법농단 수사가 시작한 뒤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전ㆍ현직 법관은 최소 80여명에 달한다. 이중 압수수색 등으로 피의자 신분이 공개된 인사는 10여 명 수준이다. 현재로선 임 전 차장을 넘어 ‘윗선’ 개입 수사에 집중하는 분위기지만, 검찰이 수사 마무리 단계에 ‘어느 선까지 사법처리 대상자로 볼 것인가’하는 고민이 커질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애초 검찰은 의혹과 관련한 판사를 모두 수사선상에 올려 놓고 사실관계를 확인 후 기소 단계에서 입건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문제는 ‘윗선’과 임 전 차장 등 중간 책임자급 인사를 제외한, 실무진이던 판사들에 대한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과거 법원행정처가 일제 강제동원 재판, 옛 통합진보당 관련 재판 등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한 정황이 담긴 문건 다수 확보한 상태다.
문건 작성에 관여한 판사 역시 여럿으로 알려졌고, 재판 거래 등 윗선 지시를 받고 문건을 작성하거나 지시사항을 이행한 것을 직권남용의 공범으로 볼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 사법처리 대상자 수가 달라질 전망이다. 검찰 안팎에선 “당시 사법행정을 담당한 판사들에게 재판과 관련해 필요한 지원을 하는 광범위한 직권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따라 사법처리 여부가 달라질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조금이라도 관여한 판사들 모두를 의율(적용)하게 되면 그 수가 많아 가히 사법시스템 마비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일부 진술이 엇갈리는 등 사실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조사 대상 전ㆍ현직 판사가 많았지만, 실제 사실관계가 명확해진 기소 단계에서는 중간 책임자급 이상으로 집중돼 사법처리 대상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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