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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윌리엄 유잉 기획전... 카메라에 담은 시대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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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윌리엄 유잉 기획전... 카메라에 담은 시대 초상

입력
2018.11.03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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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버틴스키의 ‘제조 17번, 더후이시 데다 닭 처리 공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에드워드 버틴스키의 ‘제조 17번, 더후이시 데다 닭 처리 공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은 현대 문명을 가장 세세하게 보여주는 매체다.”

스위스 출신 사진 전문 기획자 윌리엄 유잉(75ㆍ전 로잔 엘리제 사진미술관장)은 사진의 특성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마련된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전을 기획했다. 32개국 135명의 사진 300여점을 ‘문명’이라는 주제로 한자리에 모은 초대형 사진전이다. 1995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인간가족’전 이후 동시대 문명을 조망하는 세계적 규모의 첫 사진전으로 평가된다.

전시는 1990년대 초부터 20여년간 쌓여온 문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른다. 거창한 주제임에도 8개의 소주제(벌집, 따로또같이, 흐름, 설득, 통제, 파열, 탈출, 다음)로 분류해 다각도에서 문명을 해석했다. 수십 만장의 사진을 놓고 일정한 패턴을 찾아봤더니 8개로 추려졌다고 유잉은 설명했다.

사진들은 둥근 모양의 거미줄처럼 된 전시장에서 말없이 메시지를 던진다. 중국의 닭고기 가공 공장 풍경을 찍은 에드워드 버틴스키(‘제조 17번, 더후이시 데다 닭 처리 공장’)나 수십 만 명이 운집한 광장을 촬영한 시릴 포체(‘무제’) 등은 인간이 모여 있는 큰 집합체로서의 문명을 얘기한다. 버틴스키는 “나는 지구를 개별 나라가 아닌 76억명이 사는 하나의 유한한 행성으로 본다”며 “문명 성장 욕구에 맞추기 위해 우리는 지구를 거대하게 개편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을 줄을 선 구직자(오카모토 히로시의 ‘리크루트’)와 군인 선발 시험장의 팽팽한 긴장감(미켈레 보르초니의 ‘노동 인구’)으로 담은 작품도 있다. 빼곡히 들어찬 선적 컨테이너(앨릭스 매클레인의 ‘선적 컨테이너’)와 집들이 촘촘하게 박힌 고층 아파트(마이클 울프의 ‘밀도의 건축 91번’) 등에서는 빠르게 이동하고 쌓이는 현대 문명의 속도가 체감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1 전시실에서 펼쳐지는 ‘문명-우리가 사는 법’ 전 풍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1 전시실에서 펼쳐지는 ‘문명-우리가 사는 법’ 전 풍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렌즈는 최첨단 현대 문명의 산물들도 찍어냈다. 전쟁에 사용됐던 전투기와 지뢰, 로켓, 잠수함 등을 비롯해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우주센터와 연구소 공간 등의 사진이 펼쳐진다. 로켓과 연구실 등 첨단 기술을 찍은 사이먼 노퍽은 “기술은 전쟁 중에 가장 크게 발전한다. 최고의 기술적 진보는 피의 대가를 치르고 산 것이다"라며 인간이 개발한 기술이 인간의 종말을 자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해내는 사진도 관객의 눈길을 잡는다. 프란체스코 치콜라의 ‘한 배를 타고’는 리비아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구조선을 기다리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희망과 절망이 함께 담긴 듯한 사람들의 새하얀 눈이 흑백사진에서 도드라진다. 도시 외곽 수용시설로 걸어가는 이민자의 두려운 표정(세르게이 포노마레프)이나, 국경을 지키는 경찰 병력의 봉쇄 앞에서 울고 있는 이민자 아이들(조르지 리초브스키)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이슈인 경계를 다루는 포토저널리즘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소주제 ‘다음’에서 미래를 모색하면서 끝을 맺는다. 앞으로 인간 문명이 당면하게 될 여러 가지 주제를 사진으로 돌아보는데,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기후변화, 과도한 인구 증가, 대규모 기근 등에 대한 두려움이 곳곳에 묻어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외국인 수장인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취임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획했다. 마리 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취임 이전부터 구상해, 재임 기간 내 전시를 선보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전 세계적 공통 관심사인 문명을 사진가가 어떻게 보여주는지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7일까지 과천관에서 열리며, 한국을 시작으로 중국, 호주, 프랑스 등 10여개 미술관에서 순회전으로 진행된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뱅상 푸르니에의 ‘우주 계획’ 연작.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뱅상 푸르니에의 ‘우주 계획’ 연작.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윌리엄 유잉(75) 사진 큐레이터.
윌리엄 유잉(75) 사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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