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 탓 보건의료 시스템 붕괴
결핵 등 병 걸린 채로 조국 탈출
콜롬비아 등 인접국에 질병 퍼트려
브라질서는 18년 만에 홍역 발생
살인적 인플레이션과 물자 부족 등으로 베네수엘라인들의 대탈출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들 난민의 취약한 건강상태가 주변국의 중대한 위협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공중 보건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난민들이 말라리아, 황열병, 디프테리아, 댕기열, 결핵,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바이러스 등을 인근 국가로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대거 유입된 콜럼비아, 브라질 등 국경마을의 공중보건에는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외신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콜럼비아 서부지역과 브라질 북부지역에만 230만명의 베네수엘라 난민이 이주한 것으로 추산된다. 심지어 베네수엘라 국경에서 900㎞ 이상 떨어진 브라질 아마존주 마나우스시에는 18년간 발생하지 않았던 홍역이 올해 들어 다시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4건의 의심 사례가 보고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달까지 약 1,000명이 확진 판정을 받는 등 맹렬하게 확산되고 있다. 브라질 보건당국에 따르면 북부 아마존주와 로라이미아주에서 올해 2,000명가량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으며, 이 중 12명이 사망했다. 아마존주는 지난 7월 보건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유엔 산하 범미주보건기구(PAHO)에 따르면 홍역은 브라질, 콜럼비아, 에콰도르, 페루는 물론 대륙 남단 아르헨티나로까지 퍼지고 있다. 미 국립보건기구(NIH)의 남미전염병연구자 아이린 보시 박사는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적절한 의료적 조치 없이 국경을 넘는 이들로부터는 수백만 가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면서 “공중보건 관점에서 보면 이는 더 나빠질 수 없는 ‘퍼펙트 스톰’의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난민들의 취약한 건강은 베네수엘라의 무너진 공중보건시스템 때문이다. 경제가 본격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전력과 상수도 등 사회기반시스템의 부실화, 의약품 보급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 때남미에서 손꼽히는 전염병 예방국가였던 베네수엘라의 보건시스템이 붕괴됐다.
더 큰 문제는 베네수엘라인들의 건강상태가 얼마나 악화됐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마두로 정권은 베네수엘라의 보건시스템은 정상적이라며, 이를 문제 삼는 건 악의적인 뉴스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2015년 이후 국제기구에 보건 및 사망률 통계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공중보건시스템 상태를 외부에 알린 의사가 해고됐으며 이를 알리려는 의료진은 체포 위협에 시달리는 등 엄격한 보도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지난해 베네수엘라 보건당국의 문서를 통해 영유아와 산모 사망률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제대로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베네수엘라 난민들은 인접 국가의 의료기관과 보건소에서 무료 접종을 받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인구 1만6,000명의 작은 국경도시인 브라질 파카라미아 마을에는 매일 180명의 베네수엘라 난민이 보건소에 대기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접경국가 의료시설 응급실도 건강이 악화된 난민들이 만원을 이루고 있다. 콜럼비아 북쪽 국경도시 쿠쿠타 병원응급실의 40%는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점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회복되기 전까지 이런 상황은 개선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90만명 이상의 난민이 유입된 콜럼비아의 경우 2021년까지 최소 180만명에서 최대 400만명의 베네수엘라 난민이 더 쏟아져 들어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WSJ는“국제 의료계에서는 베네수엘라 난민사태로 인한 남미의 보건위기가 결정적 국면에 도달했다고 경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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