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표현 바꿔 부정적 이미지 희석
유사 소송 기업에 설명회… 소송비 국비 지원도 검토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연일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번 판결이 이미 유사한 내용으로 한국 법원에 제소된 일본 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판단 하에 사전에 강력한 차단막을 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해 “구(舊) 조선반도(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이어 “한일 간 곤란한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일본뿐 아니라 한국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며 “한국 정부의 전향적인 대응을 강하게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정부는 ‘징용공’이란 표현 대신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라고 말씀 드리고 있다”며 “당시 국가총동원법 국제징용령에는 모집과 관(官) 알선, 징용이 있었고 이번 재판의 원고가 모집에 응했다고 표명했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 동원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모집(1939년 9월~1942년 1월) △관 알선(1942년 2월~1944년 8월) △징용(1944년 9월~1945년 8월) 등으로 실시됐고, 이번 재판의 원고 4명은 1941~1943년부터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에서 노동을 시작해 징용에 해당하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강제동원에 의한 노동력 수탈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구별 없이 강제징용으로 통칭된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징용’이란 표현에 강제성이 포함돼 있는 만큼 대내외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 수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산케이(産經)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해외 미디어를 대상으로 홍보전을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아울러 전날부터 신일철주금을 포함해 14건의 유사 소송에 제소돼 있는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배상과 화해에 응하지 않도록 요청하고 있다. 사실상 일본 정부가 기업들에 배상 거부 지침을 내린 셈이다. 이와 관련,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외무성, 경제산업성, 법무성 등이 공동으로 70곳 이상 일본 기업들의 소송 대응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를 위해 일본 기업의 소송비용을 국비로 지원하는 것도 검토되고 있다.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장관이 전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 국민과 기업들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기대한다”면서 신속한 대응을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정부의 대응이 지체될 경우 향후 잇따를 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수습이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이와 관련, 내달 5일 광주고법에서는 일제 강점기 미쓰비시(三菱)중공업에서 강제노동을 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재판에 대한 선고가 이뤄진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