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절벽, 경기 하강 등 주요경제지표에 ‘빨간 불’이 켜진 가운데 1%대 흐름을 이어오던 소비자물가가 2%대로 올라섰다. 특히 기름값이 계속 상승하고 있어 유류세 인하 등 물가를 안정시키면서 가처분 소득을 늘리려는 정부의 정책도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냔 우려가 나온다.
1일 통계청의 ‘10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 2.0%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오른 것은 지난해 9월(2.1%) 이후 13개월 만이다. 지난 1~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1.6%로, 저물가 기조가 이어졌다.
물가가 오른 것은 석유류ㆍ농산물 등 일부 품목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한 탓이다. 석유류는 지난달 11.8% 상승했다. 6월부터 두 자릿수 상승폭이 계속되고 있다. 휘발유(10.8%) 경유(13.5%) 자동차용 LPG(11.0%) 등이 모두 두 자릿수 상승폭을 기록했다. 두바이유 가격이 9월 배럴당 평균 77.3달러에서 10월 79.6달러로 오르는 등 국제유가가 상승한데다가 같은 기간 평균 원ㆍ달러 환율도 1,120원에서 1,130원으로 오르는 악재가 겹쳤다.
정부가 오는 6일부터 유류세를 15% 인하하지만 이런 국제 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가격 인하 효과는 상쇄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유류세가 인하되면 소비자물가가 현재보다 0.2~0.3%포인트 내려갈 것으로 추산하지만 이는 국제유가나 환율 등 외부 요인에 변화가 없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기대효과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유류세 인하는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이므로 딱 세수가 줄어드는 만큼의 효과만 있다“며 “지금보다 유가가 더 상승하면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식탁물가까지 고공행진이다. 폭염과 폭우의 여파에 채소류가 13.7% 상승했고 쌀(24.3%) 토마토(45.5%) 파(41.7%) 무(35.0%) 등의 오름폭도 컸다. 우유(4.2%)와 빵(7.3%) 가격도 올랐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현재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종합지수)가 9월까지 6개월 연속 하락하는 등 경기 하강 신호가 강해지는 가운데 물가까지 오르면서 저성장 국면에 가계소비까지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적잖다. 단 정부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입장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현 상황이 스태그플레이션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처럼 충격 요인에 따른 물가 급등이 경기 침체를 가져오는 수준은 아니라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한국은행도 물가안정목표(2%)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경기, 고용 상황 전반이 악화된 가운데 물가까지 오르면서 가계 소비를 늘려 내수를 부양하겠다는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점점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서민들의 체감물가는 지표보다 훨씬 높은 상황”이라며 “정책 효과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도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인 가계 생활비 경감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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