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만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에게 회유당해 오히려 범죄에 가담한 영화제작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일 사기 및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영화사 대표 강모(44)씨 등 4명을 구속하고 박모(33)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또 이들에게 유령법인을 만들도록 자신의 명의를 제공한 채모(57)씨 등 12명을 공정증서원본 등 부실기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강씨 등은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유령법인 및 사업자 33개를 개설한 뒤 콜센터용 대포전화기 860여대를 개통,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공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그 대가로 10억여원을 챙겼다.
중국에 보내진 이들 대포전화기는 일반 가정 전화기와 달리 상대방 휴대전화에 발신자 번호가 ‘070’ 또는 ‘1588’ 등으로 뜬다.
이들은 대포전화기 개통을 위해 채씨 등 12명을 이용했다. 금융기관을 사칭한 대출광고를 내고 찾아온 채씨 등에게 대출을 빌미로 법인개설을 유도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대출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형사처벌만 받을 처지에 놓였다.
경찰조사결과 강씨가 범행에 처음 가담하게 된 것은 2016년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복수하는 이야기’라는 내용의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중국 조직원들을 만난 게 화근이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위해 중국 내 7개 조직을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2016년 한 조직원으로부터 “콜센터용 전화기를 개통해 주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에 영화제작비가 생각나 가담하게 됐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제안을 받고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담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강씨의 범행은 치밀했다. 전화 단말기를 중국으로 보낼 때 인천항과 평택항 등에서 중국을 오가는 소무역상들을 이용했다. 소무역상들에게 보낼 때는 퀵서비스만을 이용했다. 퀵서비스도 여러 지역을 거쳐 가도록 해 최초 발송지를 숨기기도 했다.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고 직원들간에도 별명을 사용하는가 하면 2~3주 단위로 대포폰을 바꿔 사용했다.
대포 전화기를 건네받은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국내 133명으로부터 10억원 상당의 사기행각을 벌였다.
경찰관계자는 “올 초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 중 특정 번호가 유령법인 명의로 개설된 사실을 파악해 수사하게 됐다”며 “유령법인 개설과 전화기 개통 과정에 제도적인 허점이 있어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 관련 기관에 제도개선 사항을 전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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