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만큼 강력한 단어가 있을까요? 매일 떠오르는 해와 같이, 존재를 다독이고 일으키는, 감정적 단어이기도 하지요. 한편으로는 내일만큼 막연한 단어가 있을까요? 저도 아픈 존재에게 내일 꼭 만나요 라는 기도를 계속 드린 적 있지요.
내일은 스스로의 아이러니를 알고 있었나 봐요. 미지를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말하며 늘 앞장서 떠나고 있으니까요. 자신의 쓰임새는 몰라도, 열대우림에서 베어진 통나무가 얼음박물관의 기둥이 되는 마법은 알고 있었으니까, 저를 쓰려고, 또 저를 쓰라고, 이런 의지이자 메시지를 쉬지 않고 보내게 되었지요.
내일을 따르려거든 오늘을 탕진해야 하지요. 탕진의 기본은 ‘가진 것이 있다’에서 출발하지요. 없으면 탕진할 수 없지요. 새롭고 온전한 24시간이 매일 매일 도착하는데도 말이죠. 같은 시간이라도, 없다와 있다, 두 생각은 정반대지요. 쉬지 않고 걸어도 계속 자신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내일은 ‘있다’에서 출발하니까, 닳도록 졸여도 눌어붙지 않는 소슬한 희망, 어둠을 접붙이는 용접공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는 것이지요. 내일이 먼 곳에서 먼 곳으로 옮겨갈 수 있는 이유지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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