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 유사한 소송에 제소돼 있는 자국기업을 대상으로 배상이나 화해에 응하지 않도록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로 일본 기업 70여 곳이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대책 강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1일 정부 설명회와 관련해 “외무성, 경제산업성, 법무성 등이 공동 개최하고, 한국에서 70곳 이상의 일본 기업들의 소송 대응을 측면 지원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경우 사실상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 배상 거부 지침을 내리는 셈이다. 이와 관련, 신일철주금은 지난달 30일 대법원 판결에서 패소한 직후 “판결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일본 정부의 대응상황 등에 입각해 적절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일본 정부는 또 신일철주금과 같이 피해 배상 소송에 제소된 자국 기업에 대한 상황 파악을 위해 청취조사에 착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일본 재계에서는 자국 기업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잇따를 경우 한국과의 무역 등 양국 경제관계가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당장 광주고법은 일제 강점기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재판에 대한 선고를 내달 5일 선고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하는 배경에는 자국 기업이 제소돼 있는 관련 한국 내 14건의 소송에 대한 영향은 물론 중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판단해서다.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장관이 전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통화 이후 “한국 정부가 일본 국민과 기업들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기대한다”며 신속한 대응 조치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 정부는 해외국가와 언론을 대상으로 한 홍보전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다. 산케이(産經)신문은 이날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반한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국제사회가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럽과 미국 미디어와 외국을 상대로 설명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한국 측에는 대응방침의 조속한 마련을 촉구하며 압박하고 있다. 한국 측의 대응과 관련해 지체될수록 관련 소송과 관련해 수습이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몇 달씩이나 기다릴 일은 아니다”는 정부 관계자를 인용, 한국 정부가 시간을 끌 경우 일본 정부가 법적 수단도 불사하겠다는 뜻이라고 보도했다. 고노 장관도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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