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사는 30대 후반 직장인 이혜영씨는 지난 17일 부모님이 사은품으로 받은 베개가 라돈이 검출됐다고 언론에 보도된 제품과 유사한 것으로 의심돼 라돈 농도를 측정해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시중에서 20만~30만원 가량 하는 라돈측정기를 구입하기는 부담스러웠는데 온라인을 통해 강남구청에서 대여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부랴부랴 대여 신청을 했지만 대기자가 무려 700여명. 내년 3월이 돼서야 대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씨는 “대기시간이 긴 것도 문제지만 구청이 근무하는 시간에 맞춰 대여와 반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빠듯하다”며 “민간업체를 알아보니 2~4만원대로 대여하고 있어 이 서비스라도 이용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침대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검출된 이후 베개, 생리대, 욕실선반 등으로 라돈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지방자치단체의 라돈측정기 대여 서비스에 시민들이 몰리고 있다. 워낙 신청자가 많아 지금 신청해도 늦게는 내년 4월쯤에나 대여를 받을 수 있는 지자체도 있어 시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31일 환경부에 따르면 라돈 공포가 확산된 이후 라돈측정기를 주민들에게 대여해주는 지자체들이 크게 늘었다. 서울의 경우 25개 자치구 중 18개 자치구가 대여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보통 대여기간이 1박2일인데 자치구 기준으로 라돈측정기 보유대수는 5~30대에 불과해 지자체에 따라 대기자가 수백명에 달하는 상황이다. 서울 송파구의 경우 대기자수는 1,000여명으로 지금 신청하면 12월 중순 이후에, 강남구는 800여명으로 내년 4월에나 측정기를 빌릴 수 있다. 신청자들이 몰리면서 강남구, 서대문구 등은 추가로 예산을 편성해 라돈측정기 대수를 늘리거나 보다 정밀한 기기를 추가로 들여오는 것도 계획 중이다. 실내대기질관리를 담당하는 강남구청 관계자는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이나 노인분들의 신청이 많은데 지금까지 이용한 300여명 중 기준치를 초과한 가구는 2가구에 그쳤다”면서도 “워낙 대기자가 많아 연내에 총 66대를 확보해 22개 주민센터에 3대씩 배치하고 서비스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방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전 서구의 경우 대여 신청자가 많아 측정기를 지난 17일부터 10대에서 18대로 늘렸으나 대기자는 350여명에 달한다. 대여서비스에 시가 직접 나선 부산의 경우에도 9월말 기준 대기자가 5,000여명에 달해 해운대구, 강서구 등 인구가 많은 자치구는 대여서비스를 이용하려면 2개월 가량 기다려야 한다.
대여자들이 늘어나면서 지자체들이 무료 대여를 할 수 있는지를 두고도 혼선을 빚었다. 중앙선관위는 5월 라돈침대 사건이 터진 후 지자체들의 문의에 공직선거법에 따라 ‘무료 대여가 위법(기부행위)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지난 19일 환경보건법을 근거로 ‘무료 대여가 가능하다’고 결론을 바꿨다. 이에 따라 아직까지 1,000원 가량의 비용을 받는 곳, 무료로 전환한 곳 등이 뒤섞여 있다. 서울시 자치구 한 관계자는 “대여 서비스를 시작할 때 무료 대여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1,000원을 받고 있지만 바뀐 내용은 전혀 듣지 못했다”며 “무료 대여가 가능하다고 확인이 되면 무료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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