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청구권중재 결의안 추진
경제계는 유사 소송 등 예의주시
일본에서 한국 대법원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과 관련한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들도 대법원 판결이 한일관계 악화를 초래했다며 한국 정부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경제계는 강제징용과 관련한 다른 소송에 대한 영향과 신규 투자 자제 등의 관계 냉각을 우려했다.
자민당은 31일 외교부회 소속 의원 등이 참석한 회의를 열고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른 중재절차를 일본 정부가 밟기 시작하도록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나카소네 히로부미(中曽根弘文) 전 외무장관은 이 자리에서 “한국은 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했고,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전 총무장관은 “분노를 넘어 기가 막힌다”고 성토했다. 회의에선 “정부가 일본 기업의 재산을 지켜야 한다”, “정부뿐 아니라 자민당 차원에서도 대응책을 내야 한다” 등의 의견이 제기됐다.
일본 언론들도 진보ㆍ보수성향을 불문하고 비판을 쏟아냈다. 진보성향 언론인 도쿄(東京)신문은 ‘사법판단에 정치영향’이란 제목의 해설기사에서 “양국관계의 법적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사법 판단이 ‘적폐 청산’이라는 정치적 흐름 속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한국에선 정치가 여론에 영합하기 쉬워 ‘국민감정법’이란 말이 있다. 이번에도 여론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게임에 징용 문제가 얽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수성향인 요미우리(讀賣)신문은 “한국에선 여론의 압력이 강해 사법 판단조차 국민감정에 좌우되기 쉽다”며 “양국이 오래 공유해 온 견해와 입장은 고려되지 않고 한국 독자의 일방적인 역사관이 깊게 반영됐다”고 비판했다.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사설에서 “일본도 감정적 대립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자제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주체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것은 한국 정부”라고 지적했다.
일본 경제계는 이번 판결이 자국 기업에 대한 자산 압류 등의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양국 정부의 대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신일철주금 등 철강제조사 단체인 일본철강연맹은 이날 성명에서 “이번 판결이 한일관계의 기초인 한일 청구권협정의 해석을 일방적으로 변경한 것이어서 극히 유감”이라며 “지금까지 쌓아 올린 양국 간 경제관계를 훼손할 수 있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한국에선 약 70곳의 일본 기업이 소송을 당한 상태이고 이번 판결로 다른 소송에서도 패소할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수출ㆍ관광 분야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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