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공소장)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30일(현지시간) 독일 올덴부르크 지방법원 형사법정. 피고인석에 앉은 독일인 남자 간호사 닐스 회겔(41)은 “검찰의 공소사실이 맞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약물 주입 수법으로 환자 100명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순순히 시인한 것이다. 짧고 굵게 범행을 실토한 그는 “내가 인정하는 모든 건 사실”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이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가장 끔찍하고 소름이 끼치는 ‘다중(多衆)살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회겔은 이미 최소 6건의 살인, 수차례의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돼 2015년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그런데 이후 희생자가 100명 더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보강수사에 나선 검찰은 회겔이 2000~2005년 근무한 병원 두 곳에서 환자 100명을 살해한 사실을 밝혀 내 그를 추가 기소했다. 이날 재판은 그의 ‘새로운’ 혐의와 관련해 열린 것이다.
회겔의 범행이 유럽을 경악시킨 까닭은 ‘간호사 회겔’ 앞에서 환자들이 너무나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는 의사의 처방 없이 리도카인, 염화칼슘 등 과다 복용 시 인체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미치는 약물을 주사한 뒤, 소생시키려 했다. 자신의 솜씨를 과시하려는 의도였는데, 그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일부 환자는 실제로 살아나긴 했으나, 회겔의 근무 시간대에 환자 사망률은 치솟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환자 대부분이 중상을 입었거나, 사망 직전의 상태였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그는 덜미를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 범행 전모가 밝혀졌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희생자들 중 일부는 화장 처리됐기 때문이다. WP는 “추가 수사 과정에서 시신 130구 이상이 발견됐다”며 “(회겔이 살해한) 희생자는 추정치보다 더 많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독일 수사당국은 회겔이 근무했던 병원들의 책임 유무도 따져 보고 있다. 그의 불법 행위를 인지하고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쉬쉬한 정황이 있어서다. 2005년 한 환자에게 회겔이 독성 약물을 주입하려 하는 걸 적발하고도 병원 측이 즉시 개입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또 같은 수법으로 다른 환자를 살해한 뒤에야 경찰에 신고했다.
한편 더 큰 문제는 회겔이 10년 안에 석방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사형제는 물론, 절대적 종신형(가석방 없는 종신형)도 폐지된 독일에선 종신형을 받은 피고인도 형기를 15년 정도 채우면 가석방되는 경우가 많다. WP는 “(추가 기소 건으로) 회겔의 형량(종신형)이 실질적으로 바뀌진 않을 것”이라며 “이번 재판에서 조기석방이 금지되지 않는 한 이론적으로 볼 때 그는 10년 안에 자유의 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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