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법조계 시각차
여당 일부 의원들과 법조계 진보단체가 사법농단 사건 연루 법관의 탄핵소추 추진 움직임을 보이면서 정치적 논란이 불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법관 탄핵 역시 국회 의결 사항이어서 특별재판부 설치 문제에 이어 여야 충돌을 빚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31일 권순일 대법관과 이규진ㆍ이민걸ㆍ김민수ㆍ박상언ㆍ정다주 부장판사 등 6명을 탄핵소추 대상으로 꼽았다. 이들은 ‘통상임금’ 등 주요 재판에 개입하거나 동료 판사들을 사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권 대법관을 제외한 5명은 현재 법관징계위원회를 통해 재판 업무에서 배제됐다. 민변과 함께 특별재판부를 대표 발의 했던 박주민 의원이 소속된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과 정의당이 탄핵소추안 추진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헌법은 법관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지 않는 한 파면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헌법 제65조에 따라 법관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법적 처벌에 앞서 국회가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정치권과 민변이 주장하는 법관 탄핵 또한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법관 탄핵소추안은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고, 과반수가 찬성하면 의결된다. 최종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한다.
과거 국회의 법관 탄핵 시도는 두 차례 있었으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적은 없다. 전두환 정권 시절 일선 판사들에게 부당한 인사를 조치를 한 유태흥 전 대법원장에 처음으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다가 국회에서 부결됐다. 광우병 촛불시위 사건 피고인들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신영철 대법관에 대해서도 2009년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지만,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 이내 표결되지 않아 자동으로 폐기됐다.
법원 내부적으론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데다 대상 법관들이 이미 재판에서 배제돼 있는 만큼 탄핵소추안 발의는 이르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탄핵을 하려면 분명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들의 잘못을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고법 판사도 “거론되는 사람들이 핵심인지 아닌지, 잘못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되지 않은 채 무작정 직을 뺏는 선례를 남기는 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탄핵 필요성을 주장하는 측에선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을 때를 요건으로 하기 때문에 검찰 수사와는 무관하다고 반박한다. 서기호 민변 사법농단 태스크포스(TF) 탄핵분과장은 “이들이 위반한 국가공무원법, 법원조직법 등은 형사상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아도 법률 위반으로 인정되는 것들”이라며 “탄핵 사유는 명백하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 이후에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며 “검찰 수사나 형사재판을 운운하며 법관 탄핵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다만, 여야 4당이 합의한 특별재판부 처리도 자유한국당 반대로 교착 상태에 있는 만큼 발의가 되더라도 본회의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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