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교육정책 뒤통수 맞는 학부모들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당국 믿으면 낙오
현실 외면 속 “정부 믿어라” 언제까지
첫 번째 죄, 유치원: 사립 유치원 학부모들이 그토록 공분한 건 단지 자신의 아이를 맡긴 유치원 원장의 파렴치함 때문만이 아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뒷짐만 지고 있던 교육당국에 대한 배신감이 더 컸을 수 있다. 원아 1인당 월 29만원씩 지급되는 누리과정 지원금은 편의상 유치원에 지급되는 것일 뿐, 사실상 학부모에게 주는 돈이다. 혹시라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교육과 보육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그런데 그 돈을 원장들이 제 주머니 쌈짓돈 쓰듯 마음대로 썼다. 성인용품을 사고, 루이뷔통 가방을 사고, 단란주점을 가고.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이런 일이 감사에서 무더기로 적발됐는데도 교육당국이 내린 처분은 기껏 주의나 경고였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오면 배가 고프다고 징징대고, 교재비나 간식비 등 추가로 내야 하는 돈이 갈수록 늘어나고, 그 돈을 계좌이체가 아니라 현금으로 직접 건네야 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국공립의 문이 비좁아 비용 부담이 큰 사립유치원으로 떠밀었으면, 교육당국이 그 정도는 관리해줄 거라 믿었던 학부모들만 순진했다.
두 번째 죄, 초등학교: 초등 1, 2학년생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알파벳도 못 쓰는 아이, 거의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 올해부터 초등 1, 2학년에 방과 후 영어를 금지하면서 생긴 현상이란다. 영어유치원 등을 다니며 어려서부터 영어 실력을 키워 온 아이들의 학부모들이 ‘영어 절벽’을 우려해 사교육을 더 늘리게 되면서 교육당국만 믿고 손을 놓은 아이들과의 격차가 더 벌어졌음을 빗댄 얘기다. 교육당국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가 영어를 배울 적령기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지만, 그렇게 벌어진 격차를 좁힐 만큼 공교육의 영어 교습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건 교육당국만 모르는 현실이다.
세 번째 죄, 중학교: 외국어고 진학을 준비하던 한 중3 학부모는 몇 번이고 결정을 바꿔야 했다고 한다. 대통령 공약사항인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 폐지 방침에 일반고로 방향을 틀었다가, 예상보다 전환이 더디자 다시 외국어고로 선회했다. 특목고ㆍ자사고에 지원하면 일반고 이중 지원을 금지한다는 교육당국의 강력한 ‘페널티’에 다시 일반고로 유턴을 했지만,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올해는 이중 지원이 허용되자 또 다시 마음을 바꿨다. 결과적으로 교육당국이 그러거나 말거나 고집스럽게 특목고ㆍ자사고 입시를 준비해온 학생만 특혜를 본 꼴이 됐다.
마지막 죄, 고등학교: 만약 숙명여고 교무부장 쌍둥이 딸의 시험문제 유출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 수시 전형으로 속칭 명문대에 진학을 했을 것이다. 고지식하게 수시를 준비해 온 누군가의 입학 기회를 빼앗으면서. 개별 학교의 사례에 전국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다 같이 분노하는 건 비단 이런 노골적 범죄가 아니라도 크고 작은 속임수가 수시엔 널려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돈을 들인 만큼 자기소개서의 품질이 높아지고, 몇몇 학생들에게 교내 수상 등 스펙을 몰아주고. 아무리 수시가 과정을 중시하는 올바른 방향의 대입이라고 한들,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수능보다 절대 나을 수 없다는 걸 교육당국자들은 인정했어야 한다. 그런데 1년을 질질 끌다 내놓은 2022 대입개편안은 이도 저도 아닌, 수능 위주 정시의 찔끔 확대였다.
그래도 믿어라?: 정부를 믿으면 망하는 게 2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부동산, 다른 하나는 교육이다. 정부 말만 믿고 집을 사지 않았다가 평생 따라잡을 수 없는 재산 격차에 좌절하는 이들이 있듯, 교육당국 말만 믿고 곧이 곧대로 교육을 했다가 자식이 뒤쳐지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다. 둘의 공통점이 있다. 이상만 좇다 현실을 애써 도외시하려 한다는 것.
새 교육수장인 유은혜 부총리는 다를까. “그래도 믿어라”고 강요하기에 앞서 왜 당국을 믿으면 낙오자가 되는지 밑바닥 교육현실을 냉철히 되짚어보시길.
이영태 정책사회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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