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이민 문제 쟁점화 선거전략
11ㆍ6 중간선거 유세에 한창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는 ‘출생 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을 건드리고 나섰다. 불법 이민자나 일시 방문자라 하더라도 미국 땅에서 아이를 낳기만 하면 시민권을 얻는 이 제도를 행정명령으로 폐지할 계획이라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출생 시민권은 그러나 수정헌법 14조에 규정된 헌법적 권리라는 게 학계 대다수 의견으로 실제 이 제도 폐지를 추진하더라도 법원으로부터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중간선거를 코 앞에 두고 강경한 반(反) 이민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며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선거 전략이라는 시각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30일(현지시간) 공개한 인터뷰에서 출생시민권 폐지와 관련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말을 항상 들어왔다. 그거 아느냐. 그럴 필요 없다”면서 “법률로 할 수 있지만, 행정명령으로도 할 수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어떤 사람이 입국해서 아기를 낳으면 그 아이는 본질적으로 미국의 모든 혜택을 누리는 시민이 되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다. 이는 말도 안 된다. 이제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진행 과정에 있는데, 행정명령으로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 법학자들은 출생시민권 제도를 바꾸려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수정헌법 제14조 제1절은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한 사람, 그 사법권에 속하는 모두 사람은 미국 시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피터 스피로 미국 템플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해당 조항의 의미는 분명하다면서 "미국에서 태어난 어린이는 미국 시민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미국 법무부도 이 제도를 바꾸는 것은 개헌 밖에 없다는 공식 입장을 1995년부터 밝혀왔다. 법무부의 이런 입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재고될지에 대한 질문에 법무부 대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고 WSJ은 전했다. 출생시민권을 부여하는 나라가 미국이 유일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며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 33개 국가가 자국 출생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다만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14조에 담긴 ‘사법권에 속하는’ 이란 문구에 불법 이민자들을 배제하는 의미가 담겼으며, 대법원이 이 사안에 대해 명확한 판례를 남긴 적이 없다며 합법적인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자녀에게만 이 조항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을 맡았던 마이클 앤턴은 현행 제도가 수정헌법을 잘못 이해한 데 따른 것이라고 WP 인터뷰에서 주장한 바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이날 한 포럼에서 “대법원이 제14조 표현이 미국에 불법적으로 있는 사람들에게 명확히 적용되는지 판결을 내린 적이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옹호했다. 하지만 사법권이 불법 이민자에게도 적용되며 대법원도 포괄적인 맥락에서 출생 시민권을 적용해왔다고 WSJ는 전했다.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행정명령으로 출생시민권을 폐지할 수 없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법적 논란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를 꺼낸 데는 결국 중간선거의 핵심 의제로 불법 이민 문제를 쟁점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렸다는 지적이다. 원정 출산이나 불법 이민자 출산에 대한 보수층 불만을 지지층 결집의 동력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의 미국 유입을 막겠다며 군대를 멕시코 접경지역에 투입한 데 이어, ‘텐트 도시’ 건설 등 강경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합리적인 근거에 따른 법적 주장이라기보다는 '정치쇼'(political stunt)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 시민자유연합의 이민자 권리 프로젝트 책임자인 오마 자드왓은 NYT에 “중간선거를 며칠 앞두고 분열을 심고 반(反) 이민적 증오의 불길을 부채질하기 위한 명백하고 노골적인 위헌적 시도”라고 비난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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