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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난제 쌓였는데 또 과거사 발목… 곤혹스러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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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난제 쌓였는데 또 과거사 발목… 곤혹스러운 정부

입력
2018.10.30 20:00
수정
2018.10.30 23:0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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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강제징용 배상 판결 후폭풍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소송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혼자 살아남은 게 슬프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소송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혼자 살아남은 게 슬프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설상가상이다. 2015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 형해화 논란에 이어 한일관계에 다시 과거사 악재가 불거졌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에서 대법원이 기업들의 배상 책임을 최종 인정하면서다. 오래 전 양국이 정치적으로 타결한 합의가 사법의 영역으로 들어와 백지화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한국 정부가 수세(守勢)에 놓이게 됐다. 당분간 지속될 경색 국면 해소의 관건은 결국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될 거라는 분석이다.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우리 대법원 명령에 일본 기업이 순순히 응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일제 식민지배와 강제징용이 합법이라고 판단하는 데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일본 정부가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판결을 근거로 피해자 측이 강제집행 등 조치를 취할 경우 도리어 일본 정부는 공식 불복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상대 외교 협상과 제3국 위원이 포함된 중재위원회에서의 논의로 분쟁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일본 정부가 누차 시사해 온 대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절차를 밟을 수 있다. ICJ 제소는 여론전(戰) 성격이 다분하다는 게 전문가 해석이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CJ 재판은 강제 권한이 없어 상대방 동의 없이는 열리지 않는다”며 “한국이 걸핏하면 국가 간 약속을 뒤집는다는 자국 주장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벼르고 있었다는 듯 당장 일본 반응이 심상치 않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장관은 이날 각각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거나 “한국이 일방적으로 양국관계의 법적 근거를 훼손했다”며 강하게 비판했고, 외무성은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고노 다로(왼쪽) 일본 외무장관이 30일 도쿄 외무성에 이수훈 주일 한국 대사를 불러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 배상 최종 판결과 관련해 항의하고 있다. 이날 면담에서 고노 장관은 이 대사에게 악수도 청하지 않는 등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고노 다로(왼쪽) 일본 외무장관이 30일 도쿄 외무성에 이수훈 주일 한국 대사를 불러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 배상 최종 판결과 관련해 항의하고 있다. 이날 면담에서 고노 장관은 이 대사에게 악수도 청하지 않는 등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공은 한국 정부에 넘어온 형국이다. 국제 여론전뿐 아니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 소환 등 외교적 압력, 한국과의 경제 협력 제한 등이 여차하면 일본이 내놓을 법한 카드들이다. 다툼이 장기화할 경우 일본 기업들의 대한(對韓) 투자 축소나 관광 등 인적 교류 위축, 혐한(嫌韓) 정서 확대 등 민간 부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우리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배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을 취해 온 한국 정부의 입장문에는 고심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는 이날 판결 직후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며, 대법원의 판결 관련 사항들을 면밀히 검토한 뒤 이를 토대로 총리가 관계 부처 및 민간 전문가 등과 함께 제반 요소를 종합 고려하면서 대응 방안을 마련해나갈 것”이라는 문안을 정했다.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표현 일색이다.

다만 “한일 양국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고도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언론에 “정부는 출범 때부터 과거사가 양국관계 발전을 방해하지 않게 한다는 ‘투 트랙’ 원칙을 견지해 오고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로키(low-keyㆍ저강도) 대응으로 기조를 잡을 경우 일본도 화답할 듯하다. 강경 일변도 대응을 지속하기 힘든 사정이 일본에게도 있어서다. 개인ㆍ기업 간 민사소송에 정부가 개입하는 게 볼썽사나운 데다 한일, 한미일 간 대북 비핵화 협상 공조가 현재 불가피한 상황이기도 하다. 2005년 참여정부 당시 구성했던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대책 민관 공동위원회’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와 관련, 일본에 추가 보상을 요구하기 어렵다고 내렸던 결론을 앞으로 바꿀지가 관심이다.

한일관계 전문가들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실익이 뭐냐를 따질 필요가 있다고 정부에 조언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금은 북한 비핵화 문제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전략적 결정을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며 “대일 갈등과 여론을 함께 관리하면서 한국 정부가 배상금을 내는 방안을 찾는 게 현재로선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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