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31>’신의 땅’ 라싸
‘신의 땅’이라는 라싸는 해발 3,650m 높이에 있었다. 칭짱열차를 타고 5,000m가 넘는 탕구라역도 넘었으니 한참 아래로 내려온 셈이다. 열차 안에서 산소는 추가로 공급 받았지만 기압은 자연상태 그대로였다. 그 덕분에 40시간 열차를 타고 오면서 몸이 자동으로 고산에 적응된 느낌이다. 라싸에 첫 발을 내디뎠는데 고산반응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산악인이 먹는다는 고산약 다이아막스가 효과를 발휘했을 지도 모르겠다.
고산지역을 올 때 하루 이틀 샤워하지 말라는 주문이 있었다. 샤워를 해도 머리카락은 감지 말라고 했다. 머리 말릴 때 고개를 숙여 흔드는 것이 고산증을 부른다는 것이다. 송광사에서 오신 큰스님이 “난 머리카락이 없어 해당사항이 없네”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라싸의 첫인상은 중압감이었다. 희박한 공기와 기압 때문이 아니었다. 라싸역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광장도 봉쇄돼 있었다. 그 곳은 공안과 무장경찰의 공간이었다. 옆문으로 나오니 정문 쪽으로는 사진촬영도 금지였다. 10년 전인 2008년 중국의 티베트 지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터진 곳이 바로 라싸였다. 1951년 티베트가 중국에 복속된 후 아직 100년도 지나지 않았고 1959년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라마 14세도 건재한 터라 중국의 과민반응이 피부로 느껴졌다.
◇석가모니 등신불 모셔진 조캉사원
라싸에 왔으니 순례자들의 목적지부터 찾아야 했다. 티베트인들이 살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 바로 라싸고, 그 중 최고의 성지는 조캉사원이다. 647년 창건된 티베트 최초의 목조건축이라서가 아니다. 이곳에는 당나라 문성공주가 시집올 때 가져온 석가모니 12세 등신불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라싸 관련 영상을 보면 항상 조캉사원 녹원전법상 아래 광장에서 오체투지하는 순례자들이 빠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진촬영이 금지된 사원 안에서 티베트를 통일하고 문자를 만든 송첸감포왕과 문성공주, 석가모니 불상의 존재를 확인한 것으로 먼 길 온 보람이 있었다. 이 날도 사원은 순례객들로 붐볐다. 사원의 독특한 향기는 촛불과 버터기름의 합작품이었다.
조캉사원을 나서면 일단 오른쪽으로 돌아야 한다. 왼쪽으로 도는 사람은 없다. 선과 악이 걷는 방향에 따라 결정된다고 그들은 믿고 있다. 마니차를 돌리는 순례객과 여행객들은 하나같이 이 바코르광장에서 티베트를 느낀다. 불교 채색화인 탕카와 장족 복장, 장식품, 유제품 가게가 빼곡하다. 팔꿈치 길이의 마니차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200위안”이란다. 가격은 재질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흥정에 따라 들쭉날쭉한다.
이 광장의 백미는 단연 인파 속에서 묵묵히 삼보일배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이었다. 모진 바람과 퇴약볕을 쬐며 설산을 넘어왔을 순례자의 얼굴은 더할 나위없이 평온했다. 내려놓은 자의 표정이었다.
이 길을 걷다 한 모퉁이에서 ‘마지아미’라는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왔다. 이 광장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퓨전 레스토랑이었다. 장족 종업원 아가씨가 “안녕하세요”라며 아는체 한다.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단다.
길가에는 야크 고기를 부위별로 잘라 파는 정육점이 군데군데 보였다. 카메라를 들어올렸더니 주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함을 친다. 야크는 자기가 잡아놓고 사진 좀 찍는다고 화내는 꼴이 기가 찼지만 정육점의 커다란 칼이 빛의 속도로 인내심을 찾아줬다.
밤새 라싸에 비가 내렸다. 아침은 흐리고 쌀쌀했다. 샤워하지 말라는 금기사항이 떠올랐지만 그냥 깨버리기로 했다. 하지 마라고 하니 더 궁금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뜨거운 물을 맞으니 오히려 살 것 같았다.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인 종파인 겔룩파 6대 사원 중 하나인 세라사원을 먼저 들렀다. 마두명왕을 모신 곳인데 꼬마들 코가 새까맣다. 어린이들의 미래를 축복하면서 코에 검은 칠을 한다. 사원에 터 잡고 사는 개들이 사진 찍는다고 짖어댄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사진에 예민한 것을 보니 티베트는 티베트다.
◇공항 보안검색보다 삼엄한 포탈라궁
압권은 역시 포탈라궁이었다. 7세기 때 송첸감포왕이 짓기 시작했고 몽골침략으로 파괴됐다가 17세기 달라이라마 5세 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곳이다. 배우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티베트에서의 7년’에서도 달라이라마 14세가 살았던 포탈라궁이 주무대다. 1997년 영화인데 화면 속 포탈라는 훨씬 고풍스런 느낌이다.
포탈라궁을 들어가는 길목은 공항 보안검색대 저리가라였다. 여권을 제시한 후 가방, 카메라, 허리띠까지 풀어야 입장할 수 있었다. 심지어 몸을 더듬기까지 한다. 궁 안에 들어갈 때까지 가방 검사는 3번이나 했다.
이곳은 크게 달라이라마가 행정사무를 본 백궁과 종교의식을 집행한 홍궁으로 구분된다. 본 건물은 13층으로 115.7m다. 영탑과 불전, 달라이라마 집무실, 라마승 숙소 등이 있으며 방만 1,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홍궁의 외벽을 가까이서 보면 버드나무의 일종인 타마리스크 가지를 다져 흙으로 반죽한 구조다. 통풍과 제습, 하중감량, 지진피해 감소 등 여러 이유가 있다고 한다.
포탈라궁 최고 높은 곳에는 달라이라마의 무덤인 영탑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중 달라이라마 5세의 영탑은 가장 중간에 크게 지어지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치장한 금만 3톤이 넘는다. 이 포탈라궁도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의 손에 파괴될 뻔했다.
해가 기울 즈음 다시 포탈라궁을 찾았다. 라싸의 랜드마크 야경을 보기 위해서다. 사진촬영 자유구역인 포탈라 길 건너 광장에 삼각대 설치하고 리모터로 셔터를 대신했다. 땅거미가 짙어가는 포탈라를 찍고 또 찍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50위안짜리 중국 화폐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화폐 속에 포탈라궁 도안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라이라마가 없는 포탈라궁은 교황이 없는 바티칸과 같았다. 주인 없는 집에 손님만 북적이는 꼴이었다. 포탈라의 야경은 고풍스러우면서 쓸쓸했다. 달라이라마가 포탈라에 생명을 불어넣길 바라는 사람은 티베트인만이 아닐 것이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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