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에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여기 왔냐 하니 얼굴을 들지 못하더라고요.”
김호연 공공운수노조 어린이집 비리고발센터장은 2013년 춘천시교육지원청에서 겪었던 황당한 일을 들려줬다. 당시 춘천시교육지원청이 단ㆍ병설 유치원을 세 곳 늘리겠다며 개최한 간담회 자리. 자문위원으로 참석을 했는데, 어린이집 원장들이 단체로 몰려와 청장실과 간담회장을 점거하고 실력행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곳엔 김 센터장의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도 있었다.
국공립 유치원이 들어서면 규모가 작고 서비스의 질도 떨어지는 어린이집에서 원아가 빠져나갈 확률이 크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국공립 유치원 설립을 추진하면 어린이집 원장들이 몰려와서 집단 항의를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 표’를 생각해 공립유치원 설립 공약을 내건 지자체장 후보는 막상 당선되면 ‘원장 표’가 더 무섭다는 걸 실감한다고 한다.
교육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국공립 유치원과 달리 어린이집은 국공립조차 대부분 민간이 위탁 운영한다. 이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아동 학대와 부실급식 사건, 보조금 횡령 비리 등에서 자유롭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어린이집 평가인증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인증기간에만 반짝 준비해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최근 5년간 아동학대 사건으로 평가인증이 취소된 어린이집이 받았던 평가인증 점수는 평균 93점이나 됐다.
결국 보육의 질을 높이려면 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민간에 위탁하지 말고 공공부문이 직영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나온 구상이 정부의 사회서비스공단, 또는 사회서비스원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최근 보육 부문을 쏙 뺀 ‘반쪽 사회서비스원’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 대신 어린이집 전면 무상보육을 발표하면서 학부모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아보겠다고 하는 것 같다. 보육비를 더 지원하면 물론 부모에게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립 유치원과 어린이집 비리가 세상을 흔든 지금, 부모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그 지원금이 제대로 쓰이는 것이다. 아이들 급식 만들 식재료를 사서 절반을 집으로 가져가고, 아이들에게는 유통기한이 지난 간식을 찔끔 주는 원장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원금을 늘리는 데만 그치지 않고 어린이집 원장들의 반발을 무릅쓰고서라도 제대로 된 사회서비스원 설립과 국공립 어린이집 직접 운영을 통해 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더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닐까.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반발이 뻔한데도 비리유치원 실명을 공개한 박용진 의원처럼.
최진주 정책사회부 기자 pariscom@hankook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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