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자기정치 하려거든 내려와라”… 정가 “차기 권력구도 맞물린 탓”
2007년 12월 대선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참패한 뒤 당에는 비상이 걸렸다. 2008년 4월 18대 총선이 채 5개월도 남지 않은 다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나라당 출신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로 추대됐다. 손 대표는 대통합민주신당 후신인 통합민주당 공동대표로 총선을 치렀다. 그 때 손 대표를 구원투수로 앞세웠던 당내 386그룹 중 한 명이 재선 의원이던 임종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였다.
10년 사이 위치가 달라진 두 사람의 인연 탓일까, 2022년 대선을 향한 차기 주자 간 신경전이 벌써 시작된 것일까. 문재인 정부 2인자로 꼽히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향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견제와 독설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여권 차기 경쟁자 중 한 명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임 실장을 맹비난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임 실장의 향후 거취를 포함해 물밑 차기 경쟁이 가열되는 형국이다.
손 대표는 29일 당 회의에서 임 실장을 겨냥해 “자기정치를 하려거든 비서실장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공박했다. “국민은 또 하나의 차지철(박정희 전 대통령 경호실장), 또 다른 최순실을 보고 싶지 않다”며 극단적 사례도 거론했다. 임 실장이 17일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 자격으로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현장을 방문한 데 대한 거듭된 공격이었다.
손 대표는 이에 앞서 지난달 13일 임 실장이 손 대표 등을 ‘꽃할배’라고 지칭하자 불쾌감을 표시했고, 지난 19일에도 임 실장이 대통령 순방 중 자기정치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손 대표의 임 실장 때리기는 차기 유력주자 견제 차원으로 해석된다. 다만 당 관계자는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을 부각하려는 뜻이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담담한 반응이었다. 핵심 관계자는 “임 실장이 자기정치를 했나요”라며 “손 대표 주장 자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화살머리고지 방문은 이행추진위원장으로서 상황을 점검하고 이행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방문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갈등설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한 매체가 ‘이 총리가 17일 야당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임 실장의 화살머리고지 방문을 두고 크게 화를 냈다’는 보도를 하면서 임 실장을 둘러싼 격론은 확산됐다. 총리실 관계자는 “총리가 그날 밤 만난 사람이 없어 팩트부터 틀렸다”며 “설령 야권 인사를 만나도 그 자리에서 비서실장을 비난하며 화를 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총리가 평소 임 실장을 나쁘게 얘기하신 적이 없다. 양측을 이간질하려는 기사”라고도 했다.
정치권에선 올 것이 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임 실장의 거취는 당장 문재인 2기 청와대 권력구도, 여권 차기 경쟁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취임한 임 실장은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청와대 및 국정운영 안정화 과정에서 역량을 인정 받았다. 2020년 21대 총선 출마 등 미래를 위해 임 실장이 내년 중에는 여의도로 복귀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외교가에선 차기 주중대사설도 나돈다. 그러나 임 실장 측은 앞으로도 다른 길을 눈에 두지 않고 한반도 평화 정착과 북미 비핵화 협상, 민생경제 등 ‘문 대통령 비서실장’ 역할에 힘을 쏟겠다는 입장이었다.
정상원 기자 ornot@hankookilbo.com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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