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이달 4조원 이탈 불구
“5000억원 투입” 미봉책 대응
“앞으로의 조정 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번 조정 국면이 우리 증시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9일 오전 금융감독원을 비롯 금융유관기관과 긴급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열고 이 같이 말했다. 최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이 22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치며 시장에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지만 우리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은 아직 견고한 만큼 지금의 조정은 저가 매수 기회라는 이야기다. 정부는 시장의 불안을 가라앉히는 차원에서 최대 5,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국내 주식시장에 긴급 투입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하지만 김 부위원장의 말이 무색하게 이날 코스피는 심리적인 저지선이었던 2,000포인트마저 내주며 1.53%나 급락했다. 코스닥은 5.03%나 폭락했다. 특히 정부는 우리나라 증시의 조종 폭이 다른 나라에 견줘 클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이날 아시아 주요 국가 중 증시 하락 폭이 가장 컸던 곳은 바로 한국과 중국이었다. 홍콩(0.38%)과 대만(0.29%) 증시는 올랐고 일본도 0.16% 하락하는 데 그쳤다. 미중 무역 분쟁으로 연일 조정을 겪고 있는 중국만 2.18% 하락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정부와는 정반대 진단을 내놓고 있다. 최근 외국인이 우리 주식시장에서 서둘러 투자금을 빼가고 있는 것은 정부 설명처럼 단순히 글로벌 경기 악화에 따른 대응 차원이 아니라 국내 기업에 대한 미래 실적 전망이 나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정부가 일부 경제지표에 치우쳐 상황을 너무 긍정적으로만 보고 있다는 얘기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을 만났는데 우리나라에 투자할 주식이 안 보인다 해 놀랐다”며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에 집착하면서 경제 엔진이 망가졌고 미래 기대감도 심어 주지 못하다 보니 외국인들이 철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책으로 한국 기업은 높은 비용에 노출돼 있다”며 “정부는 여전히 거시경제가 좋다고 하지만 정작 투자자의 입장에선 한국은 자금을 빼야 하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응은 단기 임시처방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당장 3,000억원 수준의 코스닥 스케일업 펀드를 꾸려 내달 저평가된 코스닥 기업에 투자하고 시장 상황을 봐서 추가로 2,000억원의 자금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자금이 정부 설명대로 증시 안정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국내 주식시장 총 시가총액이 1,538조원인데 5,000억원은 0.03% 수준이다. 외국인은 이번 달에만 4조원도 넘는 투자금을 뺐다. 이종우 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투자자들 달래려고 사탕 하나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투자자들에겐 전혀 의미가 없는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금이라도 한국의 투자 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규제 완화와 같은 친시장 정책을 내놔야 외국인의 귀환을 기대할 수 있다고 주문했다. 윤 교수는 “지금까진 악재가 있어도 중국 때문에 견딜 수 있었는데 지금은 구심점으로 삼을 만한 게 없다”며 “정부가 진영 논리에만 치우칠 게 아니라 대대적인 규제 완화로 경제 아젠다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익 서강대 교수는 “현 상황만 보면 향후 1~2년은 계속 조정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경각심을 갖고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