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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힘으로… 타인의 고통을 끝내 재현

입력
2018.10.30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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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 오른 소설·소설집 10편을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두 편씩 글을 싣습니다. 본심은 11월에 열립니다.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진출작인 '흐르는 편지'를 쓴 김숨 작가. 현대문학 제공∙ⓒ김흥구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진출작인 '흐르는 편지'를 쓴 김숨 작가. 현대문학 제공∙ⓒ김흥구

‘역사 의식’이나 ‘역사적 책무’란 말은 작가들에게 어떤 윤리적 태도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른바 문학의 ‘본질’에 속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나 4∙16 세월호 참사를 소설화하지 않았다고 해서 어떤 작가를 문학의 이름으로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러나 ‘한 나라’라 부르는 공동체 단위에서 구성원의 다수가 함께 겪은 거대한 역사적 폭력들에 대해, 집요하게 증언을 시도하는 작가가 한 명도 없다면 그 나라는 부끄럽다. 그 나라의 문학도 부끄럽다. 물론 윤정모의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나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 그리고 김숨 자신이 발표한 ‘한 명’의 전례가 있었으니, ‘흐르는 편지’를 유일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언 소설이라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최근 김숨이 수행하고 있는 일련의 소설적 ‘기획’들을 염두에 두면서 ‘흐르는 편지’를 읽는다면, 맥락이 좀 달라진다. 기획의 서두에는 ‘L의 운동화’가 있다. 물론 이 작품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아닌 이한열의 운동화 복원 작업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자료를 복원하는 데 있어 작가가 취해야 할 태도, 그리고 재현의 방법과 수위에 대한 심사숙고가 이 작품에서 미리 수행된다. 말하자면 재현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에 속할 만큼 고통스런 기억들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총론 격으로 쓰인 작품이다.

그리고 그 고심이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결실을 맺은 것이 ‘한 명’이다. 이 작품에서 김숨은 방대한 양의 위안부 피해자 관련 구술 및 문서 자료들을 참조하고, 그것에 문학적 살을 입힌다. 그러나 ‘최소한의 복원’ 원칙에 따라 할머니들의 육성을 담은 316개의 각주들로 하여금 주로 말하게 하고, 작가는 행간에 숨는 화법을 택한다. 아마도 타인의 고통을 재현하는 자로서 어떠한 자기 연민과 감정 전이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소산이었으리라.

그러나 ‘흐르는 편지’에 이르러 작가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제 작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하되, 과감하게 1인칭의 화법을 택한다. 독자들도 직접 느껴보라는 듯 주인공의 후각과 통각을 전경화하고, 마치 면전에서 말을 건네듯 서간체 형식을 사용한다. 말하자면 김숨은 작품 ‘흐르는 편지’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오래된 미학적 질문에, ‘글쎄, 그러나 나는 해 보겠다’고 답하고 있는 듯하다. 이어지는 후속작들(‘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이 ‘증언’과 ‘소설’ 사이의 경계 어디쯤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방증이 될 만하다. ‘흐르는 편지’ 후기에서 작가는 아직 스물 일곱 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아 있다고 썼으니, 이 기획이 얼마나 더 이어질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흐르는 편지’가 이 기획의 가장 획기적인 지점에 위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김형중 조선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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