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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법부는 성역이 아니다

입력
2018.10.30 04:40
수정
2018.10.30 09:5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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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사법부의 ‘사법농단’을 심판하기 위한 재판부 구성을 둘러싸고 여야 4당과 자유한국당의 생각이 다르다.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여야 4당의 주장을 한국당은 삼권분립 위반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 원리는 대통령제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이는 미국 대통령제에서 다수의 지배를 우려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사법부를 통해 의회를 견제하려 했던 데서 나온 것이고, 미국 연방제도도 마찬가지 원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삼권분립이 정파적 이해에 따라 편의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사법부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은 이러한 국민 신뢰를 철저히 배신했다. 민주주의의 원리는 대표와 책임성이다. 그런데 사법부는 국민에게 책임지는가. 어느 부서에 의해 견제받는가. 한국의 사법부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다. 대통령제의 근간이라 여기는 삼권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몽테스키외의 저서 ‘법의 정신’에서 연유한다. 그가 말한 원리는 입법권력과 집행권력의 문제였다. 이 원리가 미국 대통령제에 준용된 것이 삼권분립이다.

민주주의의 원리와 규범을 제도적으로 실천하는 기제가 헌법이다. 헌법에 의한 제도적 구현인 헌정주의와 인민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민주주의는 상호보완적이다. 그러나 선출 권력이 아닌 헌법재판소가 국민 대의기구가 만든 법에 대해 위헌 판정을 내리는 국면에서는 상호갈등적이기도 하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헌법에 의한 견제가 작동하는 제도이며 사법부는 국회를 견제한다. 그러나 헌정주의를 상징하는 사법부는 국민의 직접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 삼권분립의 명분으로 사법부가 성역화하면 안 되는 이유다. 미국 연방법원은 의회 상원이 인준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행정부와 의회에 대해 수평적 책임을 지는 구조다. 한국도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려면 국회 동의를 거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대법원장 후보를 지명하고, 대법원장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 구성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사실상 사법부를 통제하게 되므로 타 국가기구에 온전히 책임지는 구조가 아니다. 이는 대표와 책임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결국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판한다는 헌법 조항에 의지할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군사정권 때 사법부는 권력의 시녀였다. 권력의 보조자이긴 국회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당시 국민들은 사법부만큼은 다르리라고 보았다. 그러나 사법부는 이러한 국민 믿음을 배반했고, 사법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은 재판 개입, 재판거래 혐의를 받고 있다. 사실상 헌법 농단의 주체로 기능했다는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을 재판하기 위한 특별재판부 구성의 위헌 여부가 여야와 법조계의 쟁점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보루로 여겨졌던 사법부에서 일어난 재판 개입과 거래 의혹 등은 박근혜 국정농단 못지않은 국민 배신 행위다. 사법부의 전·현직 판사가 사법농단에 연루돼 있는 상황에서 국민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재판부 구성에 대해 보수진영은 삼권분립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사법부가 이러한 엄청난 대국민 기만 행위를 저지르고도 위헌 운운하고 삼권분립의 기본 개념이 편의에 따라 소환되는 현실이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지금의 재판부에서 사법농단에 대해 내린 판결에 대해 국민은 신뢰할 수 있을까.

청와대와 외교부 등에 휘둘리며 권력의 시종으로 전락했던 일부 재판 개입 행위는 사법권력의 남용이다. 새로운 재판부를 구성해야 하는 이유다. 사법부도 국민 통제와 입법부 및 행정부의 견제 속에 있어야 한다. 사법부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입법부도 행정부와 사법부의 견제를 받아야 하고, 행정부는 말할 나위도 없다. 이것이 진정한 삼권분립이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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