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매년 11월 첫째 토요일(올해는 3일)은 ‘바이슨의 날(National Bison Day)’이다. 미국인들이, 흔히 버팔로(Buffallo)라 부르는 북미 들소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는 날인 셈이다. 오래 전부터 바이슨 보호단체와 목장주 등 경제인단체, 문화ㆍ역사ㆍ생태주의자들이 저 날을 공식 국경일로 지정하자는 운동을 펼쳐 왔고, 2012년 바이슨의 날을 제정해 각종 행사를 펼쳤다. 특히 평원을 끼고 있는 중서부 주들의 바이슨 사랑은 유난해서 와이오밍과 오클라호마 캔자스주의 주 상징 동물이 바이슨이고, 미 내무부 깃발과 여러 주의 주기(州旗)에도 북미 육상 최대의 포유동물인 바이슨이 새겨져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6년 5월, 바이슨 기념법(National Bison Legacy Act)에 서명, 그리즐리 베어나 말코손바닥사슴 등 유사한 체급에 우람한 위엄을 지닌 경쟁자들을 제치고 바이슨을 국가 상징 포유동물로 공식 지정했다.
바이슨의 역사는 북미 개척자들의 사냥-전쟁-개발의 역사와 고스란히 포개진다. 더 전 선주민 인디언 시대의 바이슨은 고기와 가죽을 제공하는 신성한 동물이어서 사냥의 대상이자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었고, 인디언 부족경제와 자치의 바탕이었다. 16세 북미에 서식한 바이슨은 약 2,500만~3,000만마리에 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19세기 들면서 바이슨은 기업적 사냥의 대상이 됐다. 가죽이 주목적이었다. 더러 고기도 먹었겠지만, 워낙 넘쳐나 혀만 잘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레버넌트’의 모피 사냥꾼들은, 육체노동자 하루 일당 1달러가 안 되던 시절에 좋은 가죽 하나로 약 3달러를 벌 수 있었다고 한다.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백인-인디언 전쟁으로 바이슨은 더 치명타를 입었다. 백인 기병대는 인디언을 말살하기 위해 바이슨을 사냥했다. 19세기 말 북미 바이슨은 멸종 위기에 몰렸다.
20세기 초 바이슨 보호운동이 시작됐고, 1907년 테디 루스벨트 정부와 북미바이슨협회가 브롱크스 동물원의 바이슨 15마리를 오클라호마 위치타산맥 야생보호구역에 방사, 바이슨 생태복원사업이 본격화했다. 현재 북미에는 약 35만마리가 서식 중이다. 하지만 다수가 가축 소와 교배돼, 옛 바이슨과는 다르다는 설도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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