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부족해 결과 통보 지연
책임소재 판단 늦어져 유가족들 발 동동

K(61)씨는 지난 5월 경기도 한 대학부속병원에서 위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복강경 수술을 받은 후 급격히 상태가 악화돼 사망한 아내(60)의 시체부검 결과를 5개월 넘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아내가 의료사고로 사망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서가 유일하기 때문. 늦어도 한 달 정도면 결과가 나올 것으로 믿었던 K씨는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아내를 보낸 슬픔이 분노로 변했다. 슬하에 자식이 없어 오직 아내만 바라보고 살았던 그는 새까맣게 타 들어간 속을 달래기 위해 연신 술만 마시다가 쓰러져 지난달에는 병원 신세까지 졌다. 그는 29일 “기초생활수급자라 소송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아내를 숨지게 한 병원도 병원이지만 부검결과를 내주지 않고 있는 국과수도 너무 원망스럽다”고 토로했다.
시체 부검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부검을 담당하고 있는 국과수의 법의관 인력 부족으로 부검결과 통보가 갈수록 지연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수술 등 의료행위를 받다가 명확하지 않은 사유로 사망한 환자들의 유가족들은 부검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책임소재를 가릴 수 없어 발만 동동거리고 있다.
국과수의 시체부검 건수는 2015년 6,172건에서 2016년 7,772건, 그리고 지난해에는 1만2,897건으로 증가했다. 국과수 관계자는 “2016년 5월 충북 증평에서 타살이 자살로 처리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경찰이 ‘변사에 관한 업무지침’을 개정하면서 부검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국과수는 시체부검을 실시해 그 결과를 문서(감정서)로 작성해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에 통보하는데 부검이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체부검을 담당하고 있는 국과수의 법의관 인력은 31명에 불과하다. 법의관 1명당 1년에 416건 이상 매달려야 한다는 얘기다. 인력 충원도 쉽지 않다. 정원을 38명에서 53명으로 늘렸지만 정원 공백만 커졌을 뿐이다. 의과대학에서 법의학 교육 외면, 이에 따른 전공자 부족, 법의관에 대한 처우 부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충원을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통상 국과수가 감정서 작성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은 6주 가량. 하지만 최근엔 3개월 이상이 보편적이고, 길게는 5, 6개월까지 밀리기도 한다. “인력부족으로 부검이 지연되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게 국과수 설명이다.
부검이 지연될수록 결과에 대한 신뢰까지 떨어지는 모습이다. 2015년 9월 서울 한 종합병원에서 급성담낭염 진단을 받고 복강경 수술을 받다가 상태가 악화돼 사망한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장녀 고(故) 이나미(83) 여사의 외아들 조경서(63)씨도 검찰에 고소를 한 상태다. 조씨는 “부검을 의뢰한 지 70일이 지나서야 부검 결과를 받았는데 결과를 신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강태언 시민의료연대 사무총장은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환자 사망사건의 경우 국과수의 부검결과가 향후 보상, 책임소재 등을 가리는 열쇠인데 장기간 지연될 경우 환자 가족들의 고통이 커지는 것은 물론 부검의 신뢰도도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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