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책임자 법원행정처 전 차장 구속.. 윗선 수사 탄력
법원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59)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범죄사실에 대해 상당 부분이 소명 됐다는 판단을 내리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의혹의 ‘몸통’이자 임 전 차장과 ‘공범’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겨냥한 검찰의 윗선 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는 28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임 전 차장을 구속 수감 후 첫 소환해 범죄 혐의와 관련해 차한성, 박병대, 고영한 등 전직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관여ㆍ지시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앞서 임 전 차장의 구속 전 피의자신문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7일 새벽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지위 및 역할ㆍ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ㆍ수사 경과 등에 비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그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사법농단 의혹 전반에 연루된 임 전 차장에 대해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것이어서 윗선 수사에 탄력이 붙게 된 셈이다.
검찰은 다음 단계로 세 명의 전직 대법관과 양 전 대법원장을 겨냥하고 있다. 검찰은 30여개 범죄 혐의가 적시된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청구서에 이들을 ‘공범’으로 규정했다. 사법농단 행위가 단순 중간 실행자인 임 전 차장 선에서 결정될 수 없고, 최고 의사 결정권자의 승인ㆍ지시가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검찰은 이미 한달 전, 제한된 범위 내였지만 이들에 대해 사무실ㆍ차량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임 전 차장을 통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논의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연시키거나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진료’관련 소송에 개입한 정황을 잡았고,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논의한 내용을 파견 판사를 통해 빼돌리거나 대법원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뒷조사하도록 지시한 정황도 포착했다. 후임 행정처장인 고 전 대법관의 경우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등과 관련해 개입한 정황, 차 전 대법관의 경우 강제징용 소송을 놓고 청와대ㆍ정부 관계자 회동에 참석해 박 전 대통령 지시를 전달 받은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검찰로선 임 전 차장을 통해 윗선 지시ㆍ개입과 관련한 유의미한 진술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사법농단 사건 당시 지휘 관계상 임 전 차장이 윗선 지시를 직접 받았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구속 전 검찰 조사 당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3년 12월과 2014년 10월 각각 차 전 대법관과 박 전 대법관을 공관에 불러들인 것과 관련해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는 취지로 답하는 등 모르쇠 전략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임 전 차장 측 변호인은 구속영장 발부 직후 “법리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우선된 부당한 구속”이라며 “검찰수사에 일절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전직 대법관들과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한 차례 압수수색을 통해 어떤 물증을 확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대법원 내 지위상 임 전 차장 입을 통해 나오는 진술이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며 “임 전 차장의 심경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가 윗선 수사의 향배를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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