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적 품목 섞는 ‘스파이스 입점’
고객 흥미 높여 매출 함께 상승
백화점이 달라졌다. ‘1층 잡화, 2층 여성복, 맨 위층 식당가’같은 오랜 매장 배치 관례가 깨지고 있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혁신적인 시도가 성장세가 주춤한 백화점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리뉴얼 공사를 마치고 올여름 문을 연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4층에는 가구와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리빙관이 배치됐다. 백화점이 중시하는 가운데 층에 여성복 브랜드가 아니라 가구 매장이 입점한 건 이곳이 처음이다. 당당히 명당에 자리 잡은 리빙관에는 해외 디자이너와 작가의 미술 작품들이 곳곳에 전시돼 있어 갤러리 분위기를 풍긴다.
현대백화점의 시도는 고객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지난해 현대백화점의 패션잡화 매출 비중은 72.0%로 2015년(73.2%)보다 줄었지만, 리빙은 10.1%로 3년 전(9.2%)보다 늘었다. 박채훈 현대백화점 MD전략팀장은 “고객은 계속 달라지고 있는데 백화점의 매장 구성은 오랫동안 변화가 없었던 점을 반성하며, 소비 패턴 변화를 바탕으로 매장 구성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7월 재개장 후 2개월간 무역센터점 리빙관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1% 증가했고, 고객도 52.6%나 많아졌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달부터 서초구 반포1동 강남점 5층 여성캐주얼관에 ‘패션 팝업 장터’를 선보이고 있다. 통상적인 고정 브랜드 매장과 달리 이곳에는 3개월마다 한 번씩 유행에 맞춘 새로운 브랜드로 바뀐다. 여성캐주얼관은 20, 30대를 겨냥한 공간이지만, 온라인 쇼핑에 열중하는 2030세대 대신 40대 이상 고객이 주로 이 곳을 찾는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패션 팝업 장터 개점 한 달 뒤 여성캐주얼관 전체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48.9% 올랐고, 고객 수 역시 51.9%나 늘었다. 40세 이상 고객은 6%포인트 줄어든 반면 39세 이하 고객은 7%포인트 증가했다. 참신한 아이템으로 젊은 층을 백화점으로 불러 모으겠다는 전략이 통한 것이다.
패션 팝업 장터 바로 옆에는 젊은 층이 선호하는 화장품 브랜드를 모은 편집매장 ‘시코르’가 있다. 화장품 매장을 전통적인 1층이 아니라 여성복 층에 배치한 것이다. 다른 품목의 브랜드를 같은 층에 입점시켜 고객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양념 역할을 하도록 하는 이른바 ‘스파이스 입점’이다. 이은영 신세계백화점 시코르팀장은 “서로 다른 성격의 브랜드로 매장을 구성하면서 해당 브랜드는 물론 주변 매출도 끌어올리는 효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해 문을 연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은 여러 층에 스파이스 입점을 시도했다. 5층 패션관에는 김영모 과자점이, 2층 명품 매장 사이엔 헝가리 디저트 카페 제르보가, 지하 1층 화장품과 신발 매장 사이엔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가 들어갔다. 걷느라 지친 고객들에게 쉬면서 허기도 달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쇼핑 시간을 늘리는 전략이기도 하다.
식당가도 변신에 합류했다. 서울 강동구 현대백화점 천호점 12층 식당가는 리뉴얼 후 지난 4월 재개장하면서 매장을 나누는 경계벽을 과감히 없앴다. 밀폐된 구조의 개별 매장이 이어진 보통 백화점 식당가와 달리 이곳은 층 전체가 밖이 보이는 스카이라운지 형태다. 이혁 현대백화점 영업전략담당 상무는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스타일을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이 오프라인 유통채널의 경쟁력”이라며 “상식을 뒤엎는 시도를 통해 쇼핑의 재미를 북돋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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