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최상의 음악을 들려주는 피아니스트들은 연주력 그 자체뿐만 아니라 공연장의 환경까지 신경 쓴다. 섬세하게 악기를 다루는 만큼 악기와 조율사, 의자까지 신경 쓴다. 연주자마다 유독 민감한 부분이 있게 마련. 우리는 잘 모르는, 피아노 대가들이 연주 전 세세히 점검하는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도 권위를 인정 받는 헝가리 출신 연주자 안드라스 쉬프(65)는 연주회를 할 때마다 특별한 사람을 대동한다. 자신의 전속 조율사다. 다음달 4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독주회도 예외는 없다. 2008년 첫 내한을 시작으로 이번이 다섯 번째 내한인 그는 매번 전속 조율사와 함께 왔다. 고전 음악 해석의 권위자로 이름난 쉬프는 이번 독주회에서 바흐와 베토벤, 멘델스존과 브람스에 이르는 독일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전속 조율사 역시 독일 출신의 토마스 휩시다. 휩시는 1986년부터 세계적인 악기제작사 스타인웨이 앤드 손스사에서 일했고, 2010년부터는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모든 건반 악기의 조율 책임자를 맡고 있다. 쉬프뿐만 아니라 많은 연주자들이 찾는 조율사다.
피아니스트들이 피아노 조율에 신경 쓰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최근 15년 만에 내한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2)은 아예 자신의 피아노를 싣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 탄생한 작품을 연주하는 경우에 한한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내한공연에서는 20세기에 작곡된 레너드 번스타인의 ‘불안의 시대’를 연주해 피아노를 가져오지 않았다. 2003년 내한 때는 피아노 건반과 액션(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현을 때리게 하는 장치) 부분을 가져와 조립해 연주했다. 올해 지메르만이 연주한 롯데콘서트홀의 관계자에 따르면 지메르만은 콘서트홀이 보유한 피아노 중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요청으로 미리 피치(소리 높낮이)를 440헤르츠(1초 동안 진동수)로 맞춰놓은 피아노를 선택했다. 지메르만은 청소년시기 피아노 수리점에서 일했던 경험 등으로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다루는 데도 익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7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첫 협연을 한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데미덴코(63)는 자신의 의자를 지니고 다닌다. 190㎝에 달하는 큰 키로 인해 보통 의자에 앉아 연주하려면 어깨를 구부리고 불편한 자세가 되는 탓이다. 그의 의자는 높이가 보통 피아노 의자에 비해 낮고 휴대가 가능하다. 이탈리아의 피아노 제작자인 자신의 친구 파치올리에게 특별 제작을 부탁한 의자다. 데미덴코는 이 의자를 투어 공연이나 음반 녹음 시에 늘 갖고 다닌다.
28일 독주회에 이어 다음달 30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의 내한도 앞두고 있는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47)은 혼자만의 연습시간을 보장해달라는 내용을 계약서에 꼭 명시한다. 이번 독주회 기획사인 크레디아 측에 따르면 키신은 금, 토요일 하루 6시간씩 연습실 예약을 요청했다. 기획사 관계자는 “대개 연주자들이 하루 2~3시간 압축된 연습을 하고, 바쁜 경우 공연 바로 전날 입국하는 것에 비해 키신은 항상 공연 3일 전에는 입국한다”며 “연습과 컨디션 관리를 철저히 하는 연주자”라고 설명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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