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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적폐청산 그 이후

입력
2018.10.28 09:58
수정
2018.10.28 13: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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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었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법원이 구속영장에 적시했던 범죄사실의 상당부분에 대한 소명을 인정한 셈이므로 앞으로 진행될 수사와 재판도 그 혐의사실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부가 재판 중인 사건을 두고 권력과 거래를 실제로 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 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가지 사실관계만으로도 이미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한 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신뢰는 더 이상 추락할 수 없을 만큼 훼손되었다. 과연 앞으로 법원이 대한민국의 국격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을지 깊은 의문이 있다. 정치권력 지형의 변화가 최고법원 법관 임명 등과 같은 정상적인 방식이 아닌 고위법관에 대한 수사와 재판의 방식으로 사법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혁명의 상황이 아니라면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결국 사법부까지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던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인데 그 방식과 절차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역사에 오래 기록되어 평가받아야할 것이다.

문제는 적폐청산 그 이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벌써 1년 반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 사이 남북관계의 진전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정국운영의 주된 동력은 결국 지난 9년 보수정부 시절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적폐청산이었다. 개인이든 국가든 과거의 오류를 평가하고 개선하는 것은 건설적인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임기 5년의 정부가 가장 중요한 집권 초반의 2년 가까운 시간을 과거를 뒤집고 청산하는 일에만 매몰되는 것은 어느 면에서나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현 정부가 그간 나름의 성과를 낸 유일한 분야는 남북관계의 개선과 북핵문제의 해결이라고 할 것인데, 이 부분도 그것이 의미 있는 성과로 남기 위해서는 최종적이고 완결적인 북핵의 폐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한 담보 없이 성급한 제재완화와 경제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자본의 북한으로의 이전이 앞서게 된다면, 어쩌면 대한민국으로서는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유럽 순방 과정에서 대통령이 마치 동맹국인 미국이 완강하게 고수하고 있는 대북제재를 완화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등 다른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 국가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거절당하는 듯한 모습은 걱정스럽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경제문제이다. 미중 무역분쟁의 사이에서 심각한 고용률의 저하, 기존 제조업 기반의 붕괴 등과 같은 경제상황의 심각성은 여기서 더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경제의 활력과 성장은 각 경제주체들의 ‘경제하려는 의지’에 달린 것이고, 경제주체들이 경제하려는 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일상 속에서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각 개인들과 기업들이 경제적 행위 하나하나를 할 때마다 그것이 법적인 처벌의 대상이 아닐지 걱정해야 하고, 경제적 행위의 성과들을 국가가 가져가서 낭비하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경제하려는 의지가 살아날 리 없다. 매우 불행하고 아쉽게도 지금 정부가 들어선 이후 펼쳐진 여러 경제정책들은 경제가 살아나는 긍정적인 방향과는 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결국 그나마 버티던 코스피, 코스닥 지수도 지난 주 본격적 붕괴를 시작했고, 그 바닥이 어디인지 아무도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망하는 국가는 국운이 쇠하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내부의 정적을 더 증오하고 그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한 파당적 쟁투로 국력을 소진하곤 했었다. 임진년의 왜란 와중에도 조선의 사대부들은 이조전랑이라는 정5품의 관직 임명을 놓고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어서 공멸의 싸움을 한다. 그 파쟁이 결국 어떤 민족의 비극으로 이어졌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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