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일본 등 국내외 500여명 참석
조선시대 한ㆍ일 교류 상징인 조선통신사선이 200여년 만에 재현돼 첫 향해에 나섰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6일 오후 연구소가 위치한 전남 목포앞바다에서 조선통신사선 재현선을 공개하고 배를 물에 띄우는 진수식을 가졌다. 비가 내리는 속에서 진행된 이날 진수식에는 정재숙 문화재청장과 김종식 목포시장, 일본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 소속 회원, 시민 등 국내외 500여명이 참석했다.
조선통신사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1주년을 맞아 마련된 진수식에서는 2015년 설계에 착수한 뒤 3년 만에 실물크기 등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 일반에 공개하고, 현판 제막식에 이어 뱃고사, 한ㆍ일 공연, 항해 등으로 진행됐다.
조선 정부가 일본에 보낸 외교 사절인 조선통신사는 한양을 출발해 부산에서 배를 타고 바닷길로 일본 오사카까지 이동한 뒤 육로로 교토 혹은 도쿄까지 갔다. 정상적인 첫 통신사는 세종 11년(1429) 교토에 파견된 박서생 사절단이며, 성종 10년(1479)까지 여러 차례 통신사가 일본으로 향했다.
조선통신사를 통한 한일 교류가 본격화한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다. 선조 40년(1607)부터 순조 11년(1811)까지 12차례 통신사가 꾸려졌다. 조선 후기 조선통신사 규모는 관리와 역관을 포함해 대략 400∼500명이었으며, 선단은 6척으로 구성됐다.
이번에 연구소가 완성한 선박은 사신의 우두머리인 정사(正使)가 탑승한 ‘정사기선’을 재현 대상으로 삼았다. 강원도에서 벌채한 금강송(80~150년) 900그루를 사용한 재현선은 길이 34m, 너비 9.3m, 높이 3m, 돛대 높이 22m, 총톤수 149톤이며, 정원은 72명이다.
실제로 연구소는 수중에서 발견된 유일한 조선시대 선박 마도 4호선 구조도 확인하는 등다양한 문헌과 그림을 살펴 조선통신사선을 제작했다. 선박 운항 실태를 기록한 ‘계미수사록’(癸未隨사<木+差>錄), 조선통신사선에 사용한 척도를 수록한 ‘증정교린지’(增政交隣志), 선박 전개도와 평면도가 있는 ‘한성유고’(軒聖遺槁) 같은 18∼19세기 자료를 참고했다. 또 그림 중에는 ‘조선통신사선견비전주선행렬도’, ‘조선통신사선도’, ‘근강명소도회 조선빙사’ 등 일본 회화도 분석했다.
이귀영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은 “구조와 형태는 최대한 옛 조선통신사선에 가깝게 재현해, 전통조선기술을 전승했다”며“재현선은 선상박물관, 승선 체험장 운영, 지방자치단체 해양문화행사에 활용하는 등 일본축제에도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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