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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우리의 안은 남들의 밖보다 아름답지만

입력
2018.10.26 10:23
수정
2018.10.26 18:1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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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은 독자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는 점에서 좋은 작가였다. 약 한 세기 전 그는 외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에 관한 글을 썼다. 미국을 방문한 영국인의 오만한 태도와 프랑스를 방문한 미국인의 교양 없음을 언급한 글이었다. 그는 문단 사이사이에 그 여행객들이 집에 있을 때는 썩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설명을 여러 번 끼워 넣었다. 오만하거나 교양 없는 여행객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이런 배려야말로 러셀이 누군가를 향해 공연히 지적질을 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면서도 천수를 누린 비결일 터이다.

그러나 러셀의 부드러운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는 썩 훌륭한 사람들이 외국에서 최고의 덕을 발휘하기 힘든 경우는 금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어느 중국인 가족이 스웨덴을 여행했다. 그 가족은 예약일 전날 밤에 호스텔에 도착해 투숙을 요구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어떤 보도에 따르면 그 가족 중 아들은 어머니가 늙고 지쳤다며 호소했다고 하고, 다른 보도에 따르면 아들이 고함을 치며 호스텔 직원을 위협했다고 한다. 어떻든 간에 이 일은 민간의 작은 일이었는데도 중국과 스웨덴의 외교 분쟁으로 번지면서 세계 언론에 오르내렸다.

생각건대 집에서는 썩 훌륭한 아들은 밖에서도 어머니를 봉양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의 윤리적 기준에 맞게 행동했다. 중국 문화가 지닌 가장 따스한 미덕이 바로 노인과 가족에 대한 특별한 배려 아니겠는가. 그러나 호스텔 측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 가족은 도착한 당일의 요금을 현장에서 결제하는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다른 투숙객들이 이미 잠든 시각에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웠기에 그들을 내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안에서 통용되는 기준이 밖에서는 꼴사납고 무리한 요구일 때가 많다.

여행객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좀 더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집에서는 썩 훌륭한 한국인이 오래된 공양탑을 일본에서 찾아냈다. 공양탑이 옛 탄광촌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기에 그는 거기에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묻혀 있으리라 추측했다. 곧 한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던 예능 프로그램이 그곳을 찾아갔다. 공양탑은 오솔길조차 사라진 울창한 숲 속에 방치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방송 이후 여러 자원활동가들이 그곳을 찾아 숲과 통행로를 단장하고 추모제를 지냈다. 이처럼 한국인의 고결한 정신은 억울한 죽음을 못 본 체 하지 않는다.

그 공양탑 옆면에는 다이쇼 9년 4월에 세웠다는 큼지막한 각자(刻字)가 있다. 다이쇼 9년은 1920년으로, 조선에 강제징용이 시행되기 스무 해도 더 전이다. 징용은커녕 조선인의 일본 내 취업이 금지되던 때다. 그곳에 조선인이 묻혔다는 기록도 마을 사람들의 기억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아도 조선인 노동자와 무관한 공양탑이다. 나가사키 지방 관청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꾸 누군가가 사유지를 무단 벌채하고 제사용품을 폐기물로 쌓아 두고 가니, 결국 공양탑으로 가는 길목을 폐쇄한 것이다. 우리 안에 통용되는 기준에서는 용납 못할 결정이다. 강제징용이 사실이므로, 집에서는 썩 훌륭한 사람들은 공양탑에 묻힌 조선인 피해자들을 애도한다.

아무튼 안에서 도는 이야기와 실제 사건이 다르면 집안의 윤리적 기준을 밖에 가져갔다가 진상이 될 때가 있다. 더듬더듬 읽는 간체자에 번역기를 돌려보니 중국 포털사이트에 오르는 글들은 스웨덴을 향한 분노 일색이었다. 중국 안에서는 지난달의 사건을 스웨덴 경찰이 중국 노인을 불법으로 강제연행해 공동묘지에 버렸다는, 실제와 상당히 다른 이야기로 보도했다. 평범한 사람이 일방적인 정보를 분별하기는 어렵다. 정의로운 사람들이 인종차별을 성토하고, 여론에 떠밀린 중국 외교부는 마찰을 예상하면서도 스웨덴에 근거가 없는 항의 성명을 냈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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