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건축가 듀오 헤어초크ㆍ드뫼롱,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설계
서울 강남 한복판에 직각 삼각형의 콘크리트 건물이 우뚝 솟아오른다. 건물 앞면에 두 개의 창문만 뚫은 매끈한 이 콘크리트 구조물은 유리로 번쩍이는 주위 풍경을 압도한다. 지상 11층, 지하 5층으로 연면적 8,167㎡ 규모로 세워지는 삼탄&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이다.
강남의 강력한 랜드마크에 도전하는 이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듀오 자크 헤어초크(68)와 피에르 드뫼롱(68)이 설계했다. 한국에서의 첫 작품이다. 스위스 바젤 출신인 둘은 일곱 살 때부터 알고 지냈다. 취리히연방공대에서 함께 건축 공부를 하고 1978년 바젤에 HdM건축사무소를 공동으로 차렸다. 둘의 협업은 빛을 발했다. 2001년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미국의 프리츠커상, 2003년 영국의 스털링상, 2007년 로열 골드 메달, 일본 프리미엄 임페리얼상 등 유수 건축상을 휩쓸면서 스타 건축가 대열에 올라섰다.
건축에 옷 입히는 건축가
‘시적인 건축을 보여주는 연금술사’라 불리는 둘의 건축물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다. 재료가 가진 물성을 이용해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한다. 은색의 알루미늄 철골을 이용해 마치 새 둥지를 연상시켰던, 2008년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쓰인 중국 베이징국립경기장이 대표적이다. 같은 형태의 철골을 사용하지 않고 구부리고 휘어 자유분방한 역동성을 드러내면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 재질의 돌을 넣어 철제 와이어로 감싼 돌망태 벽으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도미누스 와이너리(1998년)도 건물의 외피에 천착해온 그들의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단순히 외관을 멋지게 꾸미는데 그치지 않고, 돌 사이로 빠져나가는 공기와 일조량을 고려했고, 다양한 품종의 포도를 생산하는 지역 특성을 돌로 표현해 건물에 담았다. 최근 완공된 홍콩의 타이퀀 헤리티지 아트센터는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캡슐 형태의 알루미늄이 건물 외관을 뒤덮었다. 헤어초크와 드뫼롱은 1860년대 벽돌과 화강암을 썼던 유적지 인근에 아트센터가 들어서는 점을 고려해 현대적인 재료인 알루미늄을 사용하되 벽돌처럼 보이도록 디자인했다. 건물은 주위 유적지와도 조화를 이룬다.
이번에 착공한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외관에 사용되는 콘크리트도 예사롭지 않다. 자세히 보면 소나무 무늬가 콘크리트에 배어 있는데, 숨은 소나무라는 뜻을 가진 송은의 정신을 반영한 것. 24일 착공식을 기념해 한국에 방문한 두 건축가는 “굉장히 시적인 이름을 가진 송은을 살려 소나무를 소재로 다뤘다”며 “콘크리트를 거푸집에 넣고 그 위에 결을 살린 소나무를 찍어 무늬를 넣었다”고 했다. “표면은 콘크리트지만 소나무로 건물이 둘러싸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무늬는 튀지 않게 은은하게 배어 있는 느낌을 준다. 거칠고 차가운 콘크리트에 새겨진 나뭇결은 따뜻하고 감성적이다. 이들은 종종 “건축에서 외장은 인간에게 옷과 같다”고 한다. 화려하고 멋진 옷이 아니라 옷을 입는 개인에 딱 맞는 옷을 뜻한다.
일상에 영감을 주는 건축
둘은 서울 강남 일대 건물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들은 “강남 주변은 미학적이지 못하고 추한 상업적 빌딩이 가득하다”며 “가로등 하나부터 대로변 건물까지 전혀 일관성이 없고, 영감을 주는 건물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평가절하했다. 지역이 주는 특색보다 정부가 정한 규제가 이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고도제한, 건폐율 규제 등 법의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조형적 가치를 최대한 이끌어낼 지가 숙제였다고 했다. 고민 끝에 삼각형 건물을 짓기로 했다. 높이를 최대한 끌어올렸지만 면적을 맞추기 위해 뒷면은 사선으로 내려온다. 대로와 마주한 건물의 정면은 세로로 긴 두 개의 창을 제외하면, 단단하고 견고한 콘크리트 벽이다. 반면 주택가와 마주하는 건물 뒷면은 층마다 테라스가 있는 계단 구조다.
안이 훤히 보이는 유리창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들은 “주위 상업적인 건물과 차별을 두기 위해 창문을 최소화했다”며 “투명한 유리 건물보다 오히려 단단하게 막힌 콘크리트 건물이 시민들에게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는 충동을 강력하게 일으킨다”고 답했다. 이어 “예술활동이 일어나는 비영리 공간인 특성상 건물이 시민을 모을 수 있고,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건물 양 옆에 구멍처럼 있는 좁은 출입구도 같은 맥락이다. 둘은 “입구를 정교하게 만든 것은 그저 열려 있는 공간처럼 느끼지 않고, 흡입력 있는 공간으로 느껴져 사람들을 이끌게 하고자 했다”고 했다. 신사옥의 4개층은 전시공간으로, 6개층은 사무공간, 1개층은 공공공간으로 활용된다.
그들의 공간에 대한 깊은 이해는 건축물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빛을 발한다. 가장 대표적인 건물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다. 두 건축가는 1981년 폐쇄된 뒤 방치됐던 화력발전소를 2000년 이후 가장 ‘핫’한 미술관으로 바꿔놨다. 발전소 굴뚝을 그대로 두면서 기존 벽돌 건물 위에 유리로 박스 형태의 건물을 올렸다. 또 미술관 주출입구를 건물 양 옆으로 만들어 템스 강변의 산책로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미술관은 연간 500만명의 관광객이 오갈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발전소 옆에 기름을 보관했던 탱크시설도 2016년 퍼포먼스, 사운드 아트 등 설치 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변했다. 벽돌로 발전소 굴뚝과 통일성을 주면서도 뒤틀린 피라미드 형태로 시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세계 최대 규모인 독일 함부르크의 엘프필하모니홀도 이들의 수작이다. 창고였던 벽돌 건물 위에 유려한 유리 건물을 올렸다. 항만에 떠 있는 아름다운 배를 연상시키는 이 건물은 ‘뮤직 크리스탈’로 불린다. 지난해 완공 이후 가장 방문하고 싶은 콘서트홀 1위에 오를 만큼 연간 수십만 명의 음악팬들이 몰려든다. 성격과 취향 등이 달라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영감을 주고 받았다는 두 사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은 평생에 걸쳐 일상에 영감을 준다”며 “이번 건물도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끌어당겨 더 많은 사람이 예술작품을 접하게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신사옥 완공은 2021년 6월 예정이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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