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사상 최연소 단장, ‘밤비노의 저주’와 ‘염소의 저주’를 깬 남자,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리더 1위,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425만달러)보다 더 높은 연봉(500만달러ㆍ약 57억원)을 받는 남자, 이 모든 화려한 수식어들을 지닌 사람은 바로 시카고 컵스의 테오 엡스타인(45) 사장이다.
보스턴 단장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예기치 못한 독특한 행보는 늘 미국 야구계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타 구단들이 타자의 배트 스피드, 타격폼, 타격 지표 등을 보고 선수를 평가하고 스카우트할 때 엡스타인은 타자의 투구 인식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스카우트 분야에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다른 구단들은 ‘시시한 컴퓨터 게임 같은 것으로 타자를 평가한다’며 엡스타인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었다. 하지만 엡스타인이 무키 베츠와 같은 성공 사례들을 만들어내자 너도, 나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메이저리그에 불고 있는 ‘뉴로 스카우팅’의 첫 시작이었다.
‘밤비노의 저주’를 풀고 ‘염소의 저주’를 깨기 위해 컵스에 합류했을 때도 독특한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부분의 구단들은 드래프트에서 투수를 선호한다. 하지만 컵스 사장으로 부임한 후 첫 드래프트였던 2012년부터 2016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때까지 엡스타인은 1라운드에서 모두 야수를 뽑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또 다시 그의 선택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10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결과물로 우려를 잠재웠다.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엡스타인은 “야수는 투수보다 부상 위험이 적고, 야수들 위주로 팀의 문화를 형성해야 우승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내가 2012년에 알버트 알모라 주니어, 2013년 크리스 브라이언트, 2014년 카일 슈와버를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뽑은 이유였다”고 밝혔다. 이 세 명은 2016년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들이었다.
성민규 컵스 스카우트는 “엡스타인 사장은 내가 지금껏 만나 본 야구인들 중에 가장 독특하다”며 “매년 시즌 후에 진행하는 구단 고위 관계자들과의 미팅에서 그는 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 스카우트는 “엡스타인은 컵스 사장으로 부임할 당시 팀을 5년 안에 우승시키겠다는 ‘5년 계획서’(a five-year-plan)를 만들었다. 100년 넘게 월드시리즈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팀을 5년 안에 우승시킨다는 것은 누가 봐도 현실 가능성이 없어 보일 수 있는데, 그는 묵묵히 준비한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나가 결국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뤄냈다.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아이디어도 그의 머리를 거치면 성공적인 결과물로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엡스타인은 염소의 저주를 깬 것에 안주하지 않고 2016년 월드시리즈 우승 후 또 다시 ‘5년 계획서’를 작성했다.
올해에도 엡스타인의 독특한 행보는 ‘진행형’이다. 미국 구단들은 9월초에 마이너리그 시즌이 끝나면 9월 중순부터 한 달간 어린 유망주들을 모아서 교육리그를 연다. 스프링캠프 때처럼 기술 훈련도 하고 다른 팀들과 연습 경기도 하는 등 일종의 ‘가을 캠프’다.
하지만 엡스타인은 올해부터 교육 리그를 없애고 10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웨이트 트레이닝과 컨디셔닝만을 하는 체력 캠프(strength camp)를 진행 중이다. 체력 캠프 기간 동안 어린 유망주들은 영양과 멘탈 트레이닝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도 접하게 된다.
야구 선수가 두 달 반 동안 기술 훈련은 전혀 하지 않고 체력 훈련만 한다는 것에 많은 야구인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허재혁 컵스 트레이너는 “체계적인 체력 훈련은 어린 선수들의 신체적 능력을 극대화한다. 즉, 펜스 앞에서 잡힐 평범한 뜬 공이 1, 2m 더 날아가 홈런이 되고, 힘이 빠져 5회를 넘기지 못하는 선발 투수가 완투까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체력 훈련을 통해 신체적 능력을 높이면 이는 자연스레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또한 허재혁 트레이너는 “기술 훈련량으로 어린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옳지 않다. 기술 훈련량의 적정선을 넘어버리면 훈련이 아니라 노동이 된다. 부상 위험만 높아질 뿐”이라며 “기술 훈련량이 선수의 기량과 비례한다면 한국과 일본 야구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의 미국, 남미 선수들보다 야구를 더 잘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들이 힘과 파워에서 동양인 선수들을 압도하기 때문에 야구를 더 잘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엡스타인이 만든 체력 캠프의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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