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 명분
독일과 접경지역 68㎞ 걸쳐
울타리 추진 확정되자 다시 논란
실효성 논란ㆍ생태계 파괴 더불어
“사실상 난민 차단” 의도 덧씌워져
지난 3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의 유입을 막기 위해 독일과의 접경 지역에 대형 울타리를 설치하겠다는 덴마크 정부 발표는 적지 않은 반대에 직면했다. ASF에 걸린 야생 멧돼지가 독일에서 건너오는 걸 차단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전염의 주된 통로가 야생 멧돼지라는 점이 아직 입증되지 않은 데다 다른 동물들의 이동까지 막아 생태계 훼손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돼지고기가 주요 수출품목인 덴마크로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고, 결국 의회 승인(6월)을 거쳐 지난 8월 이 계획은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른바 ‘멧돼지 펜스’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확산되는 모습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시간) 덴마크 현지 르포를 통해 해당 계획 자체의 허점과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NYT 보도에 따르면 덴마크 정부는 독일과의 국경선을 따라 높이 1.5m, 깊이 0.5m의 펜스를 총 68㎞에 걸쳐 세우기로 했다. 공사 착수 시기는 내년 초로 잡고 있다. 총 1,100만유로(약 143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예정이다.
문제는 실효성 의심이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ASF는 인체에는 무해하나, 돼지나 멧돼지는 감염될 경우 출혈열을 일으켜 수일 내에 죽는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돼지에게는 치사율 100%다. 최근 수년간 러시아와 동유럽, 벨기에,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발병한 사례에 비춰, 감염 경로는 야생 멧돼지가 아니라 감염된 돼지 또는 돼지고기를 옮기는 트럭, 곧 ‘인간’이라고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독일 동물건강연구소의 클라우스 데프너 박사는 “ASF의 장거리 확산은 유럽 전역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며 “울타리로는 이를 막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유럽식품안전청(EFSA)도 지난 여름 “야생 돼지를 막는 데 울타리가 효과적이라고 볼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생태계 파괴 우려도 여전하다. 이 프로젝트 책임자인 벤트 라스무센은 NYT에 “야생 멧돼지는 최대한 막고,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의 이동을 방해하는 건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슴, 수달 등은 울타리를 지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지만, 반대 진영에선 “지능이 높은 멧돼지의 국경 통과만 막는다는 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울타리를 세우려는 본심은 사실상 ‘난민 차단 장벽’을 세우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멧돼지 이동경로 파악을 위한 감시카메라 설치와 관련, 극우성향인 덴마크인민당은 “카메라를 사용해 불법 이민자들도 찾아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난민의 월경을 막도록 펜스 높이를 2m 더 올리자는 주장도 펴고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는 셈인데, 한 농부는 “돼지 보호를 위한 모든 대책을 지지하지만, 난민 이슈와 결합시키는 건 추잡한 본말전도”라고 꼬집었다. NYT는 “일부 정치인이 덴마크로의 이민자 유입을 막기 위한 국경 통제 복원을 외치면서, 중도우파인 현 정부가 애초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아 버렸다”고 지적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 @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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