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국가회계시스템 ‘에듀파인’ 2020년 의무화… 인력ㆍ예산ㆍ법 개정 등 난제
정부가 현재 25% 수준에 불과한 국ㆍ공립 유치원 취원율을 3년 내에 40%까지 끌어 올리기로 했다. 최근 불거진 사립유치원 비리 파문을 계기로 당초 2022년까지 설정했던 목표 달성 시기를 1년 앞당긴 것이다. 사립유치원 부정의 진원지인 불투명한 회계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가관리 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을 일괄 적용하고 정부가 주는 누리과정 지원금의 성격도 처벌이 가능한 보조금으로 바꿔 감시망을 촘촘히 할 계획이다. 국ㆍ공립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한편으로 남아있는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40년 가까이 민간에 맡겨졌던 유아교육의 주도권을 정부가 쥐겠다는 패러다임 전환으로 볼 수 있다.
◇유치원 회계체계 전면 손질
더불어민주당과 교육부는 25일 당정 협의를 열고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을 확정ㆍ발표했다. 앞서 11일 박용진 민주당의 의원이 시ㆍ도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된 비리 유치원 실명을 공개한 이후 유아교육의 질적 혁신을 바라는 여론의 요구가 빗발치자 종합 개선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이날 17개 시ㆍ도교육청이 일제히 실명을 공개한 유치원 감사 자료(2013~2017년)에서도 편법으로 얼룩진 사립유치원들의 민낯은 여실히 드러났다.
대책은 크게 두 갈래 방향이다. 우선 학부모들의 불신을 가중시킨 사립유치원들을 옥죄는 여러 조치들이 망라됐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회계시스템 정비이다. 2013년 누리과정(만 3~5세 교육과정) 전면 도입 후 사립유치원에는 한 해 약 2조원의 예산이 투입되지만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 확인 시스템은 전무해 감시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시ㆍ도교육청 감사에서도 사립유치원들의 대부분(91.6%)이 회계시스템 자체를 아예 모르거나 이해 부족으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장 개인이 예산 집행을 병행하는 주먹구구식 회계 관행이 지속돼 온 탓이다. 현재 전체 사립유치원의 87.0%(3,675곳)가 개인 설립 형태이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소할 대안으로 에듀파인 전면 적용 방안을 내놨다. 현재 국ㆍ공립 유치원과 초ㆍ중ㆍ고교에서 사용하는 국가 온라인 회계시스템을 사립유치원에도 도입하면 자금 흐름을 한 눈에 보게 돼 비리 발생 가능성을 상당 부분 걸러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당장 내년 3월부터 원생 200명 이상 대규모 유치원 등 600곳에 적용되며, 2020년에는 모든 사립유치원이 활용하도록 강제할 방침이다. 설세훈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은 “에듀파인을 법제화해 시스템을 거부하는 유치원은 위법 책임을 물어 행정처분과 함께 엄정 대응할 것”이라며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말 많았던 누리과정 지원금(연 1조6,000억원)도 유아교육법을 개정해 보조금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이럴 경우 횡령죄 적용이 가능해져 목적 외 보조금을 사용한 유치원 원장에게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등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장기적으로 설립자 결격 사유 등의 조항을 새로 만들어 사립유치원 스스로 교육 책무성을 갖추게 할 계획이다. 금고 이상 형을 받거나 3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은 사람은 각각 5년, 2년 간 유치원 설립 제한을 두고 폐쇄명령(유아교육법ㆍ영유아보육법 위반)을 받은 자도 5년 간 문을 열 수 없도록 했다. 유치원 원장의 교육경력 기준도 강화한다. 권지영 교육부 유아교육과장은 “관련 법령을 검토해 교원 경력 7~9년인 원장 자격 기준을 9~10년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시ㆍ도별로 통일된 체계가 없어 부실 감사 논란을 낳았던 감사제도 역시 전담조직과 상시감사 시스템을 마련하고, 특히 대형ㆍ고액 유치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우선 감사 목록에 올릴 예정이다. 또 사립유치원들이 휴업 등 집단행동에 나서면 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행위 조사를 의뢰하는 등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국ㆍ공립 확충 통해 국가 책임 ↑
당정이 사립유치원에 고강도 개혁을 요구한 것은 결국 국ㆍ공립 유치원을 확대해 유아교육의 주체를 국가로 되돌리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사립유치원은 1980년대 초 유치원 취원율 확충에 매달린 전두환 정권이 무자격 인가를 남발하면서 급증하기 시작했다. 올해 3월 기준 전국 사립유치원 수(4,220곳)는 국ㆍ공립(4,801곳)보다 적지만 수용 원아는 사립이 50만4,000명으로 국ㆍ공립(17만2,000명)의 3배에 가깝다. 이런 기형적 구조가 굳어지면서 국ㆍ공립 유치원 확대 정책은 역대 정부에서도 난제 중 난제였다. ‘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국정과제로 내건 문재인 정부도 지난 2월 국ㆍ공립유치원을 2022년까지 40% 늘리겠다는 구상을 발표했으나 사립유치원들의 거센 반발은 물론, 현실적 장애물이 해결되지 않아 시행 여부에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정부는 국ㆍ공립 확대 정책에 필요한 여건이 충분히 무르익었다는 판단 아래 달성 목표를 오히려 1년 당긴 조기 시행 계획을 확정했다. 2021년까지 2,600개 학급(22만5,000명)을 신ㆍ증설해 충원율 40%를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내년 충원 규모가 500학급에서 1,000학급으로 늘어난다.
정부 의도는 사립유치원 ‘출구전략’에서도 잘 드러난다. 교육부는 사립유치원이 폐원 의사를 밝히면 매입이나 20년 이상 장기임대 형태로 국ㆍ공립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또 사립유치원을 계속 운영하더라도 법인으로 전환할 경우 수익용 기본재산 출연 요건을 배제하는 혜택을 주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공공성이 강화된 법인형 유치원은 예산 유용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인력ㆍ예산 ㆍ법 개정 난제 즐비
교육계에서는 유아교육의 국가 책임을 높이려는 정부 구상을 대부분 반기고 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ㆍ공립 유치원 확충부터 인력ㆍ예산ㆍ부지 확보 등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국ㆍ공립 유치원이 사립에 비해 수가 많은데도 원아가 크게 적은 것은 대다수가 초등학교에 딸린 병설 형태이기 때문이다. 보통 1, 2학급인 병설은 수용 원아가 30여명에 불과하다. 때문에 학부모들은 단설(독립) 유치원을 선호하지만 하나 짓는 데 최소 50억원, 많게는 100억원이 들어간다. 부지 확보도 문제다. 지난해 서울의 국ㆍ공립 유치원 취원율은 18.0%로 전국 평균(25.5%)을 밑돌아 대도시를 중심으로 용지 구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교육부는 유치원 신설에 소요되는 재정을 연간 2,000억원으로 추산하고 필요하면 예비비를 끌어다 쓰겠다는 계획이지만 예산 편성 권한을 쥔 기획재정부가 선뜻 동의를 해 줄지 미지수다. 유 부총리는 “단설유치원을 늘리는 게 가장 좋다”면서도 “최대한 실현 가능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해 현실적 어려움을 내비쳤다.
사립유치원의 회계투명성을 강화하는 유아교육법 개정 등 법 개정 과정 역시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정부 대책이 나오자 즉각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면서 강력한 투쟁을 예고했다. 이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국회 로비력을 감안할 때 국회에서 입법에 속도를 내지 못할 경우 또다시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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