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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서 총 사라진 날, 녹슨 인식표로 돌아온 박재권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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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서 총 사라진 날, 녹슨 인식표로 돌아온 박재권 중사

입력
2018.10.25 20:00
수정
2018.10.25 22:1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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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중사, 화살머리고지 전투 종료 전날 전사… 남북은 JSA 모든 초소ㆍ화기 철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남북 공동유해 발굴 작업을 위한 지뢰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강원도 DMZ 화살머리고지에서 국군 전사자 유해를 발견했다고 25일 전했다. 유해와 함께 나온 인식표에는 '대한 8810594 PAK JE KWON 육군'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국방부 제공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남북 공동유해 발굴 작업을 위한 지뢰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강원도 DMZ 화살머리고지에서 국군 전사자 유해를 발견했다고 25일 전했다. 유해와 함께 나온 인식표에는 '대한 8810594 PAK JE KWON 육군'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국방부 제공

‘대한 육군 8810594 PAK JE KWON’

25일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인 화살머리고지(281고지)에서 65년 만에 누렇게 색이 바랜 채 발견된 이 인식표의 주인은 국군 2사단 박재권 이등중사(현재 병장)다. 박 이등중사는 치열했던 화살머리고지 전투가 끝나기 바로 하루 전 전사했다. 하지만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에 맞서 싸웠던 그의 유해가 가족에게 전해지기까지는 무려 65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지난달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극적으로 화살머리고지로 향하는 문이 열리면서다. 마침 이날은 기나긴 분단체제의 상징이었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이 총에서 해방된 날이었다.

국방부는 25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남북 공동 유해발굴을 위한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철원군 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국군 전사자 유해를 24일 발견했다”고 밝혔다. 내년 4월부터 화살머리고지에서 이뤄지는 공동 유해발굴은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도출된 군사분야 합의에 따른 것이다. 과거 남북이 DMZ 내 전사자 유해발굴을 시도한 적이 없었던 만큼 DMZ에서 국군 유해가 발견된 것 역시 처음이다.

발굴된 유해는 2구로 추정된다. 지표면에서 허벅지 뼈가, 땅 아래 약 20㎝ 깊이에서 갈비뼈와 두개골이 각각 발견됐고, M1 대검과 M1탄, 인식표도 함께 발굴됐다. 국방부가 당시 전사(戰史)와 매ㆍ화장 보고서 등을 확인한 결과 인식표의 주인은 6ㆍ25 전쟁 당시 국군 2사단 31연대 7중대에 배속됐던 박 이등중사로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24일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굴한 전사자 유해 추정 허벅지 뼈.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24일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굴한 전사자 유해 추정 허벅지 뼈.

박 이등중사는 21살이던 1952년 3월 입대했다. 연합군과 중공군 간 정전협정 체결이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땅을 더 확보한 뒤 휴전선을 획정하려는 양측 간 막바지 전투가 한창인 때였다. 중공군은 철원평야를 빼앗기 위해 1953년 6월 29~30일, 7월 6~11일 두 차례에 걸쳐 백마고지(395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공격했다. 국군 2사단과 미 9군단은 고지 사수를 위해 때로는 백병전을 무릅쓴 처절한 방어전을 벌였다.

박 이등중사는 화살머리고지 2차 전투가 끝나기 하루 전인 7월 10일 숨졌다. 고지에는 박 이등중사 외에도 국군 전사자 200여명과 미군ㆍ프랑스군 전사자 100여명의 유해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DMZ 전체에는 1만여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가 묻혀 있으리라는 게 국방부 추정이다.

화살머리고지에는 이날 국방부가 준비한 소박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사과와 배, 명태포가 올려진 상 앞에 박 이등중사 유해가 모셔졌다. 태극기로 덮인 관에는 ‘6ㆍ25 호국열사지구’라고 적힌 기가 얹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페이스북에 “박재권 대한육군 이등중사가 우리에게 돌아왔다. 전사한 지 65년 만”이라며 “이제야 그의 머리맡에 소주 한 잔이라도 올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다시는 이 땅에 전사자가 생기는 일도, 65년이 지나서야 유해를 찾아 나서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도 했다.

25일 오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살머리고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6.25 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숨진 국군 유해를 발굴한 뒤 제사를 지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5일 오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살머리고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6.25 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숨진 국군 유해를 발굴한 뒤 제사를 지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남 3녀 중 장남이던 박 이등중사의 생존 유가족으로는 80세, 70세인 두 여동생이 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여동생들의 유전자(DNA)를 채취해 유해와의 일치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유해가 박 이등중사의 것이라고 최종 확인되면 유해는 두 동생 품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 박 이등중사 유해가 발굴된 이날 JSA 비무장화 작업이 마무리됐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으로 남북이 JSA를 경비 병력으로 무장시킨 지 42년 만이다.

이날 국방부는 “남북 군사당국과 유엔군사령부는 ‘9ㆍ19 군사합의서’에 명시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비무장화를 위해 오늘 오후 1시 부로 JSA내 모든 화기 및 탄약, 초소 근무를 철수했다”고 밝혔다.

남ㆍ북ㆍ유엔사는 이날 JSA 내 북측 초소 5곳과 우리 측 초소 4곳을 각각 철수하는 한편 권총과 소총(AK-47ㆍK-2), 탄약 등 화기도 JSA 밖으로 옮겼다. 남북 각 80여명이던 경비 병력도 35명 수준으로 줄었고 무장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조정됐다.

화기 철수 작업을 마친 남ㆍ북ㆍ유엔사 3자는 26~27일 남북 모든 초소와 시설물을 대상으로 비무장화 조치 이행 결과를 점검하는 공동 검증을 진행한다. 이어 JSA 남북 지역에 각각 북ㆍ남 초소 교차 설치 작업을 한다. JSA 북측의 ‘판문점 다리’ 끝에 남측 초소가 설치되고 판문점 진입로의 남측 지역에 북측 초소가 새로 들어서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남북 교차 초소 설치가 내달 완료된 뒤 남북 민간인 간 자유 왕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철원=국방부 공동취재단ㆍ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우리 군 장병들이 25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초소를 비우기 위해 초소 내 방호 장비를 군 차량에 싣고 있다. 이날 남북 군사당국과 유엔군사령부는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에 명시된 ‘JSA 비무장화’를 위해 남북 측 초소에서 철수하고 화기와 탄약 등도 밖으로 옮겼다. 국방부 제공
우리 군 장병들이 25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초소를 비우기 위해 초소 내 방호 장비를 군 차량에 싣고 있다. 이날 남북 군사당국과 유엔군사령부는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에 명시된 ‘JSA 비무장화’를 위해 남북 측 초소에서 철수하고 화기와 탄약 등도 밖으로 옮겼다. 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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