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투자이니셔티브 패널토의서
“진상 밝힐 모든 법적 절차 진행...
터키 당국과 긴밀히 협조 중”
행사 전 에르도안과 통화하기도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배후로 거론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본격적인 출구 찾기에 나서고 있다. 사건 발생 3주 만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처음 통화를 했고, 이후 관련 의혹을 직접 부인하며 결백을 호소하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사우디 검찰도 “우발적 사고”라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용의자들이 계획적으로 카슈끄지를 살해했다고 인정, 터키 측 수사 결과에 보조를 맞추는 모습도 보였다. 이를 두고 사우디와 터키가 사우디 왕실은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사태를 봉합하는 정치적 타협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33)는 24일(현지시간)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국제회의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에서 40분간 진행된 패널토의에 예고 없이 등장했다. 또 카슈끄지 살해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악랄한 범죄이자,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 비판하면서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에둘러 강조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공개석상에서 이 사건을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그의 입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혹은 아델 알주바이 사우디 외무장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졌을 뿐이었다.
이날 왕세자의 ‘셀프 해명’은 한 편의 연극을 연상케 했다. 먼저 패널 토의의 사회를 맡은 바셈 아와달라 요르단 전 재무장관이 사전 약속이라도 한 듯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행사 주제와는 무관한 카슈끄지 사건에 대한 의견을 갑작스레 물었다. 이에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는 진상을 밝히는 모든 법적 절차를 진행 중이다. 또 범죄를 저지른 배신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터키 당국과 결과를 내기 위해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며 “정의가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준비된 듯한 답변을 쏟아냈다.
특히 자신을 살해 배후로 지목해온 터키 당국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적극 진화에 나섰다. 그는 “많은 이가 이번 사건을 악용해 사우디와 터키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는데, 살만 폐하와 나 왕세자,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있는 한 양국간 불화는 없다”고 덧붙였다. 3,000여명의 청중은 곧장 박수로 화답했다.
앞서 터키와 사우디 국영 언론들은 이번 행사가 열리기 전 일제히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건 이후 처음으로 직접 전화통화도 했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내용이었다. 통화 다음날 사우디 검찰은 “터키와 구성한 합동실무조사단을 통해 터키 측에서 받은 정보에 따르면 카슈끄지 살해는 사전 계획해 의도적으로 저질렀다는 정황이 있다”고 발표했다. 우발적 사고였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적극적인 해명과 사우디 검찰의 급작스러운 입장 발표 등으로 미뤄볼 때 사우디 왕실의 책임을 면해주는 수준에서 사태를 마무리 지으려는 ‘물밑 거래’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이 이번 사건을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일축하고 터키 법정에서 다뤄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도 이를 뒷받침한다. 터키 언론에선 왕세자 때리기 보도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한편 AFP 통신등은 카슈끄지의 장남을 비롯한 가족들이 이날 사우디를 떠나 미국 워싱턴으로 향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정부는 이들에 대한 여행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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