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완화 - 핵신고 빅딜로 무게 중심 이동… 종전선언 의미 무게감 떨어져
북미 비핵화 협상의 무게 중심이 6ㆍ25전쟁 종전(終戰)선언에서 대북제재 완화로 옮겨가면서 우리 정부도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북한의 대북제재 완화 요구가 수면 위로 부상한 상황이라 비핵화 협상으로 가는 ‘경유 조치’로 상정했던 연내 종전선언 추진 방침에 수정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청와대 내에서는 연내 정상급 종전선언을 우선 추진하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시기와 형식을 조정하는 수정안도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25일 “북한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요구가 줄어드는 등 북미 비핵화 협상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도 북미 협상을 지켜보며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초 청와대는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 전 북미가 서로 신뢰할 수 있도록 종전선언을 먼저 추진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다만 북미가 최근 대북제재 완화와 광범위한 핵신고ㆍ검증 등의 ‘빅딜’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경유 과정이었던 종전선언의 무게감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실제 정부는 최근 종전선언보다는 대북제재 완화를 염두에 둔 남북관계 개선 조치 분야에서 더 보폭을 넓히고 있다. 개성공단에 투자한 기업들의 자산 점검을 위해 방북을 허용한 게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주 유럽 순방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통한 비핵화 촉진이라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는 데 주력했다.
청와대가 종전선언을 연착륙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상들이 모여 연내 종전선언을 하는 게 기본 방향”이라면서도 “다만 아이디어 차원에서 실무급 종전선언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남ㆍ북ㆍ미 내지 남ㆍ북ㆍ미ㆍ중 국방장관이 연내에 모여 종전선언을 하거나, 장관급 종전선언에 이어 정상들이 서명하는 방식으로 종전선언을 간소화하는 방안이다.
장관급 정상회담은 종전선언의 무게를 줄여 타결 가능성을 높이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이 2차 북미 회담을 내년에 열겠다고 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연내 종전선언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다소 배치된 입장을 밝힌 것도 이 같은 차선책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상 간 종전선언이 최선이지만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내년 초로 넘어간다면 실무급 종전선언을 먼저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며 “정부가 연내 종전선언이 가능하다고 하는 건 북미 협상이 표면적으로 난항처럼 보이나 물밑교섭이 상당히 진전됐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면 종전선언의 격을 낮춘다는 것 자체가 북미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 진전된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데 북미 실무협상 라인이 즉각 만날 것 같더니 묵묵부답”이라며 “정부가 종전선언의 급을 낮춰서라도 타결해 남ㆍ북ㆍ미 대화의 동력을 살리려는 취지로 보인다”고 했다.
결국 북미 실무회담의 경과가 종전선언 이슈의 향방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북미가 실무, 고위급 협상에서 어떤 비핵화 조치와 상응조치를 주고 받을지가 관건”이라며 “다만 미국도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위해 (대북제재 완화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용 기자ㆍ신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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