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연출가 ‘우주소리’
뮤지컬ㆍ연극 이어 창극을 무대에
“창극 연출도, SF 장르를 공연으로 만든 것도 처음이죠. 제가 직접 각색한 것도 처음이고요. 창극단원들이 작창하며 극을 만들어 가는 것도 새로운 방식이었어요. 걱정과 고민도 많았는데 무대에 잘 올라간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어요.”
대학로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는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김태형(40) 연출가는 관객들이 현장에서 선택한 상황으로 만드는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관객들이 직접 공연장을 돌아다니며 극에 참여하는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배역의 성별에 무관하게 배우를 캐스팅 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같은 공간 안에서 벽을 사이에 두고 두 가지 이야기를 전개하는 ‘더 헬멧’ 등을 만들어 왔다. 이번에는 창극과 SF소설의 만남을 주선했다. 국립창극단의 신창극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우주소리’다.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김 연출가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겨지는 두 가지를 합쳐 무대에 올렸으니 이제 그 어떤 것도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뮤지컬은 물론 오페라 연출도 해봤다지만, 우리 소리로 이끌어 가는 창극은 낯설 만도 한데 그는 의외의 말을 했다. 평소에 완창 판소리 공연을 보러 다니는 ‘우리 소리’의 팬이라는 것. “판소리를 듣고 추임새를 남부끄럽지 않게 넣을 정도”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다닐 때 전통연희에 대한 수업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우리 것이기 때문일까요? 발성 방식이나 소리가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페라보다 훨씬 장벽이 낮게 느껴졌어요.”
‘우주소리’는 미국의 SF문학 거장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원작으로 한다. 생일선물로 우주선을 받은 소녀 코아티가 거침없이 우주로 떠나는 모험극이다. 코아티는 외계 생명체 실료빈과 친구가 되지만 실료빈은 코아티의 뇌를 침투해 파괴에 이르게 하는 위험인자다. 카이스트를 다니다 한예종으로 진로를 바꿨던 김 연출가에게 SF는 일찌감치 공연으로 만들고 싶었던 분야다. 무대 위에서 전부 구현할 수 없는 우주의 모습을 창극단원의 목소리로 묘사할 수 있다는 창극의 특징이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과학 용어, 기호, 지명 등을 소리로 표현했다.
팁트리 주니어의 작품을 고른 이유는 따로 있다. 페미니즘을 소재로 공연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말리지만 과감히 뛰쳐나가는 모험과 죽음으로 끝을 맞이하는 영웅적 선택은 보통 소년에게 주어지죠. 하지만 소녀들이 함께 위기를 겪고 헤쳐 나가는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단원들과 직접 가사를 쓰고 장단을 맞춰가며 창을 만들었다. 전체적인 음악 작업은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등 스테디셀러를 작곡한 김혜성 작곡가가 맡았다. 새로운 창극이라는 모토답게 창극에 뮤지컬과 연극을 한 숟갈씩 첨가한 무대로 보다 대중적인 창극으로 접할 수 있다. 다만 소리를 전문으로 하는 창극 단원들이 대사와 연기로 극을 이끌어가는 부분은 아무래도 어색한 면이 있다. 김 연출가는 “연극을 기본으로 했던 사람인지라 연극적인 대본이 나온 것 같다”며 “대사보다 소리를 통해 창극 단원들이 표현할 수 있게 했다면 더 흥미진진한 작품이 됐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첫 번째 시도가 있어야 그 이후의 발전도 있게 마련. 김 연출가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 한다. 그는 “새로운 걸 해야 살아남는다는 압박”이 아이디어의 원천이라고 답했다.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할 때 신선하고 좋다는 말을 들으려면 더 잘하려고 애써야 해요. 그래야 페미니즘 창극이든, 젠더 프리 캐스팅이든 몇 번이고 더 공연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김 연출가는 “아주 일상적이고 현대적인 이야기로 만드는 창극도 시도해 보고 싶다”고 했다. ‘우주소리’는 28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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