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부터 시작된 국정감사가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유치원 비리, 고용세습 논란으로 일부 상임위가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매년 주요 기업 총수나 금융권 기관장이 대거 출석하며 ‘호통국감’으로 명성을 떨쳤던 국회 정무위원회는 유독 올해 조용한 편입니다. 특히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던 주요 시중 은행장들의 모습을 올해는 볼 수 없었습니다. 하영구 전 은행연합회장, 이경섭 NH농협은행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심성훈 케이뱅크 대표,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 등이 출석했던 지난해와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죠. 어찌된 일 일까요.
올해 정무위 여야 간사단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증인 채택과 관련된 몇가지 원칙에 합의를 봅니다. △회사 대표보다는 실무자를 부른다 △실무진의 증언이 미흡할 경우 최종 책임자를 부른다 △소송에 휘말린 관계자는 제외한다 등에 뜻을 모은 것이죠. 총수나 기관장을 불러도 ‘재판 중이라 답하기 곤란하다’고 피하거나 실무진한테 보고 받고 답을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실제로 답을 할 수 있는 인사를 나오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다 보니 증인과 참고인으로 채택된 65명 중 주요 시중은행장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26일 열리는 종합 국감에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추가 채택된 시중은행장은 없습니다.
국감의 풍속도가 바뀐 배경으론 국회의원들이 대기업 총수나 기관장을 불러 놓은 뒤 제대로 질문도 안하고 면박이나 모욕을 주는 행태를 반복하면서 여론의 비판이 높아진 측면도 있습니다. 정무위 관계자는 “증인을 신청한 의원과 그 이유를 명기하도록 하는 ‘증인 신청 실명제’가 점차 자리잡으면서 무더기 증인 신청 관행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선 주요 은행장이 증인 채택을 피하기 위해 해외 출장을 갔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금융위원회(11일)나 금감원(12일) 등 금융당국의 국정감사가 열렸던 12~14일 주요 시중은행장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은행권 채용비리와 대출금리 조작 등 국민들이 여전히 관심을 갖고 있는 현안이 마무리되지 않았는데도 주요 시중 은행장들이 빠지면서 결과적으로 “맹탕 국감이 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홍금애 국정감사NGO모니터단 총괄집행위원장은 “대표나 실무자 중 누가 출석하느냐 보다는 국회의원들이 해당 위원회 관련 현안을 파고들어 국정감사의 취지를 얼마나 살렸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호통국감은 지양돼야 하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맹탕국감도 아닐 것입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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