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설립된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는 정보통신기술(ICTㆍ컴퓨터 등 정보기기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소프트웨어 기술과 이를 활용한 기술) 연구개발(R&D) 분야의 산실(産室)과 같다.
국내 ICT R&D 전반의 혁신을 주도하는 한편, 관련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사무실에서 만난 석제범 IITP 센터장은 ‘모험’과 ‘경쟁’을 강조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기존 R&D 사업의 흐름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행정고시(31회) 출신으로 참여정부 때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실 산업정책행정관을 지낸 석 센터장은 공직 생활 대부분을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보낸 ICT 분야 전문가다. 지난 1월부터 IITP를 이끌고 있다. 아래는 석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센터의 주요 목표, 역할에 대해 소개해 달라.
“IITP의 주 업무는 국내 ICT R&D 사업을 기획, 관리, 평가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 성장’에 기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 기관으로 거듭나는 게 주요 목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ICT 분야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렇다. 하지만 낙관적 시각만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중국 등 외국에 비해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ICT 기술력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정부가 들인 노력에 비해 성과가 적다는 것이다. 기존 R&D 정책을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다듬어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핵심 기술력을 확보하는 게 IITP의 막중한 임무다. 우리가 가진 자원 역량 중 가장 먼저 내세울 수 있는 게 인재다. 우리 업무 상당수가 ICT 관련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국내 전체 수출액에서 ICT는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그렇다. ICT가 일자리 분야에 기여해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AI)과 관련해 인력 수요가 늘고 있는데, 국내엔 이를 제대로 수행할 인재가 없는 게 현실이다. 센터에서 최근 시작한 게 AI, 빅데이터 등 ICT 산업 8개 분야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교육과 취업을 연계해 인력 수준도 보장하고, 일자리까지 책임져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생각이다.”
-ICT는 신산업 일자리 창출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맞다. 이를 위해 크게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먼저, 일자리 총량확대를 위한 공공분야 대규모 ICT 프로젝트 추진이다. 빅데이터, 정보보안, AI 등 첨단기술이 적용된 사업을 정부가 발주해 신산업을 육성하고 민간이 확대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공공(국방, 안전, 의료 등)분야 AI특화 프로젝트,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투표 및 부동산 거래, 스마트공장 등이 그 예다.
둘째는 일자리 창출 저변 확대를 위한 ICT융합 확산이다. ICT를 모든 산업의 범용기술로 활용해 ICT일자리를 전 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 초고속ㆍ초저지연ㆍ초광대역 특성을 지닌 5G가 상용화되면 새로운 통신장비, 스마트폰, 콘텐츠 시장이 성장하고, 자율주행차, 스마트 시티와 같은 혁신적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 수요에 대응한 핵심 인재 확보가 필요하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도 적합한 인재가 없다면 일자리 창출의 의미가 없다. 인력수급, 새 직업의 필요역량 등 일자리 변화를 체계적으로 예측하는 신수요 맞춤형 인재양성이 필요하다. 실제 정부는 이를 위해 ‘혁신성장 청년인재 집중양성’ 사업을 추진해 빅데이터 등 8개 분야에서 1,200명 이상의 인재를 양성 중이다.”
-올 초부터 ‘ICT R&D 혁신방안’을 추진 중이다.
“작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논의했다. 이번 1월에 마무리해서 과기부와 함께 구체적인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혁신방안은 기존의 정부 추진 R&D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R&D 사업은 지나치게 안정적이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술에 치중했다는 판단이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모험심을 가져야 한다. 기술 수준이 높고, 어렵고, 위험도가 높은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혁신방안의 또 다른 한 축은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환경, 안전, 교통, 복지 문제 등이다. 그간 정부가 추진하는 R&D는 이런 분야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못 했다. 이른바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R&D에 투자 비중을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R&D 연구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소방헬멧 기술을 연구한다면, 소방관처럼 실무에 투입되는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 실용성을 높여야 한다. R&D 연구자 간 ‘건전한’ 경쟁을 유도해 기술 혁신을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혁신 방안에 대한 업계 반응은 어떤가.
“’내용은 좋다. 그런데 실제로 다 집행이 될까’하는 우려가 많다. 지금까지 당연시 해왔던 걸 바꿀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우리는 자신 있다.”
-ICT R&D 분야는 그간 “정부 간섭이 심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물론 세금이 들어가니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 선을 넘어 ‘너무 많이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R&D 관리 체계가 지금보다 더 개방돼야 한다. 그래야 연구자나 연구 수행기관들이 자율적, 창의적으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제일 좋은 건 정부는 해결이 필요한 문제를 제시하고, 연구원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인재상은 뭐라고 생각하나.
“유연적, 통합적 사고를 갖춘 사람이다. 새로운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전체 상황을 넓은 시각으로 보면서, 유연하게 다루는 능력이 중요하다. 하나 더 덧붙이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한 사람이 모든 해결책을 찾을 순 없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답을 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필수다.
무엇보다 현실이 어렵다고 꿈, 희망을 쉽게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단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주어진다. 앞으로 세상은 점점 복잡해질 것이다. 다양한 기술이 서로 연결, 융합되며 새로운 기술이 탄생할 것이다. IITP도 이런 시대에 대비해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전문 지식을 습득하면서 현장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팀을 만들어 과제를 주면, 팀원들과 협업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향후 목표는 무엇인가.
“공공기관은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게 중요하다. ‘저 기관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정말 열심히 하고 있구나’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잘하고, 성과를 내는 것만큼 중요한 게 바로 투명성이다. 성과와 투명성,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IITP가 국민에게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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