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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충 살기’의 윤리학

입력
2018.10.25 14:48
수정
2018.10.25 16: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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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와 ‘속옷차림’은 불의에 저항하는 두 가지 형식이다. 전자는 멜빌의 인물로 19세기 뉴욕의 한 법률사무소에 고용된 필경사, 곧 부동산 양도증서 따위의 서류를 베껴 쓰는 노동자다. 후자는 작가 하완의 삽화 속 인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노동자다(‘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ㆍ웅진지식하우스). 속세의 옷을 벗고 속옷만 하나 덜렁 걸친 그는 과거엔 치열한 노동자였으나 지금은 딱히 하는 일이 없어(?) 보이는, 그러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기획하고 실험하는 중이다 (이름이 없어 겉모습만 보고 내 맘대로 작명했음을 용서하시길).

둘은 모두 좌절의 도시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바틀비 당시의 뉴욕은 화려한 허망의 도시다. 중산층의 꿈에 부푼 노동자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이지만, 실상은 소수만이 금융투자와 땅 투기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 뿐, 평범한 그들에겐 신분상승이 허용되지 않는 닫힌 공간이었다. 속옷차림의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청년들은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마저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고용은 늘 위기이고, 중산층 되기란 이미 불가능한 꿈이 된 곳. 그럼에도 둘은 모두 재난 같은 일자리에 열심히 목을 맨다. 100단어당 4센트를 받는 바틀비는 밤낮 가리지 않고, 말없이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했다(‘필경사 바틀비’ㆍ창비). 속옷차림도 그랬다. 닥치는 대로 일했고 좀 더 벌어볼 요량에 투잡도 뛰었다. 저임금에 강도 높은 노동, 해고의 불안까지 감당하면서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둘은 저항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판이하다. 바틀비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라는 매우 어색한 언어를 반복하며 고용주의 모든 지시를 거부한다. 이유도 대지 않는다. 끝내는 삶의 모든 요청에 불응한 채 죽음을 맞는다. 이에 대응하는 속옷차림의 언어는 “열심히 살지 않겠습니다”쯤 된다. 대충 살겠다는 말인데, 그렇다고 대충 넘겨짚다간 큰코다친다. 근거가 두둑하고 논리가 정연해 담론의 지위를 단숨에 꿰찰 정도다. 열심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핵심은 그 방식을 내가 결정하겠다는 것. 세상에 뺏긴 자기를 되찾는 게 목표다. 절망만 양산하는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노오력’만 강요하는 기성질서에 대한 통렬한 반박이다. 솔직함의 미덕도 갖추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이유는 아무것도 안했기 때문”이란 자기성찰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시작점이다. “왕년에 내가 해 봐서 아는데”를 입에 달고 사는 꼰대세대의 허세를 꾸짖는다. 직업에 대한 냉철한 인식도 믿음이 간다. 고소득은 물론, 재미도 있어야 하고, 너무 힘들지 않으면서도 자아실현에 사회적 평판까지 덤으로 얻는, 그런 일은 세상에 없다. 대단하진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찾고 자기방식으로 완성하자는 소박한 제안이지만, 사실 그게 프로다. 실패를 걱정하는 이들에겐 “엄청 후회하면 된다”는 깔끔한 해법을 내놓는다. 허다한 성공학 강사보다 백 번 낫다. 모호하기만 한 일과 삶의 균형은 노력과 게으름의 조화로 명쾌하게 대체된다. 이것이 ‘대충 살기의 윤리학’이다.

냉소로 자족하는 습성이 만연하다. 외환위기 이후 족히 20년이 넘는 위기의 연속 때문이다. 시대의 부정만을 탓하고 있을 순 없는 일. 이제 다른 삶을 시도해야 할 텐데, 믿음직한 매뉴얼을 얻은 것 같아 다행이다. 165년 전 바틀비가 발신한 저항의 방식은 우리에겐 수취 불가능한 우편물이다. 자기 파괴적이기도 하거니와 희망의 가능성을 서둘러 접기 때문이다. 속옷차림은 세상에 쫄지 말고 자기를 세우는 대충 살기를 함께 도모하잔다. 물론 각자의 방식으로. 이제 나도 대충 살련다. 나만의 방식으로 대충 철저하게, 더 늦기 전에 천천히 서둘러 보련다. 늦으면 또 어떠한가.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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