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민주당 진영 인사들을 겨냥한 ‘폭발물 소포’ 배달 사건을 “정치 폭력”이라고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배달된 소포는 다소 조잡한 형태의 파이프 폭탄이라고 밝혔으나, 범행 배후에 대해선 아직 수사 중이다. CNN 등 미국 언론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극단화된 미국 정치가 이번 사건을 불러왔다고 한 목소리로 우려했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과 정적 관계였거나,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해온 언론 매체와 인사들을 겨냥한 테러 시도라는 점에서 중간선거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오후 백악관에서 열린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 퇴치 관련 행사에 참석해 “먼저 오늘 있었던 클린턴, 오바마 전 대통령과 그 가족들, 공직자 등에 대한 공격 시도에 대해 잠깐 말하고 싶다”면서 “우리는 이 비겁한 공격을 용납할 수 없으며, 폭력을 선택한 모든 사람들을 강력히 비난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에서 정치적인 폭력 행위나 위협이 발붙일 곳은 없다는 매우 분명하고 강력하며 오해의 여지가 없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면서 “지금은 우리 모두 단결하고 함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철저한 수사로 강력 처벌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는 “미국민의 안전은 나에게 절대적인 최우선 순위”라며 “사건 수사에 온 힘을 쏟고 있으며 비열한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강조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날 한 행사에 참석해 “소포가 집으로 배달되기 전에 미리 걸러내 준 비밀경호국(SS) 요원들 덕분에 우리는 잘 있다”고 감사의 말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폭발물이 든 소포는 두 사람 이외에도 ‘반 트럼프’ 인사들을 집중 겨냥했다. 우선 CNN 방송 뉴욕 지국과 최소 2명의 민주당 측 인사들에게도 배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CNN 앞으로 온 우편물에는 CNN에 자주 출연해온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수신자로 돼 있었다. 브레넌 전 국장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CIA 국장을 지낸 인물로, 트럼프 행정부는 평소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해온 브레넌 전 국장의 기밀취급권을 박탈한 바 있다.
이 밖에도 민주당 슐츠 의원의 플로리다 사무실에서도 폭발물로 의심되는 소포가 발견됐고,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등 '저격수'로 꼽히는 민주당의 흑인 정치인 맥신 워터스(캘리포니아) 연방 하원의원에게도 의심스러운 소포가 보내졌지만, 미 의회 우편물 관련 시설에서 사전에 차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2일 민주당 기부자인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에게 배달된 것까지 합치면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총 6건이다. 소포는 시차를 두고 배달됐지만, 모두 파이프 폭발물 형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방 관리들을 인용, 폭발물의 스타일이 매우 유사하지만 정교하지는 않다고 전했다.
수사 당국은 동일범의 소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뉴욕 경찰의 반테러 책임자인 존 밀러는 모든 폭발물이 한 명 또는 복수의 동일한 용의자로부터 발송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워싱턴 정가는 발칵 뒤집혔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강력한 처벌을 한 목소리로 요구하면서도, 당장 13일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공화당은 이번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 진영을 향해 거친 공격을 퍼부은 게 이번 사건을 부추겼다는 비판론이 제기될 것으로 보이자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정권 들어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진 가운데 중간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이번 사건은 여야 간 정치적 주도권 다툼 과정에서 새로운 긴장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도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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