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불쑥 던지는 모호한 표현, 알고보니 스트레스ㆍ책임 회피 전략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불쑥 던지는 모호한 표현, 알고보니 스트레스ㆍ책임 회피 전략

입력
2018.11.06 14:47
수정
2018.11.06 19:24
15면
0 0

[트럼프 화법 심층분석]

“중요하지 않다” 발언하면서

심적 부담 덜어내 멘탈 관리

“지켜보자” 표현 사용 이유는

엄청난 ‘운명론자’ 성향 때문

지난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It doesn’t matter).”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We’ll see what happens).”

미국 중간선거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이런 화법에 대한 미국 언론의 심층분석이 주목을 얻고 있다. 불리한 국면에서 모호하게 불쑥 던진 것처럼 보인 말들이 지나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심중을 반영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CBS방송 시사프로그램 ‘60분’에서 브렛 캐버노 연방 대법관의 성폭력 시도 의혹을 제기한 크리스틴 브레이시포드 교수를 조롱한 것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우리가 이겼지 않느냐”라며 화제를 돌렸다. 앞서 지난 7월 ‘러시아 스캔들’로 궁지에 몰렸을 때도 트위터에서 “공모는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공모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요하지 않다’라는 표현을 빈번히 사용하는 것과 관련,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멘탈 관리기법’이라고 분석했다.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를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해 버림으로써 심적 부담을 덜어 버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2004년 CNN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그건 중요하지 않아’라고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스스로에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 인도에서 지진이 나 40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들, 그건 솔직히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라고 말했다.

태생부터 특권을 지녔던 트럼프 대통령의 삶이 영향을 줬다는 설명도 있다. 실제로는 문제가 있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뭉갤 수 있었던 삶을 살아 왔기 때문에 이런 말을 쉽게 하게 됐다는 것이다. 트럼프 관련 책의 저자인 티머시 오브라이언은 WP에 “트럼프는 부유하게 태어났고 사업과 기회를 물려 받았기 때문에 재정적, 정치적, 개인적 실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갈 수 있었다”며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부터 희생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믿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다르게 자주 쓰는 ‘지켜보자’는 표현도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공화당 지원 유세 현장에서 자주 이 표현을 사용했다. 지난 5월엔 북한이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의 대북 발언을 비난하며 6월에 개최될 예정이던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재고려하겠다고 하자, 회담 개최 여부를 묻는 질문에 “무엇이 됐든 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라고 말했고, 지난달 19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과 관련 유감을 표하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라고 언급했다.

이 표현을 놓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족과 지인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게 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할아버지와 형은 40대에 숨졌고, 트럼프 대통령 회사의 젊은 직원 3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43세이던 때 헬리콥터 사고로 숨졌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운명론자로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엄청난 운명론자”라며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데 그냥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배경이 어찌됐든 트럼프 대통령은 ‘지켜보자’라는 표현을 전략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 확답을 하지 않음으로써 책 잡힐 일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지난해 9월 “불편한 질문에 직면했을 때, 향후 계획에 대한 비밀을 유지하려고 할 때, 또는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지켜보자’라는 말을 자주 던졌다”라고 보도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