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평양공동선언 이후 남북이 한 달 만에 남북 협력사업을 가속화하면서 대북제재를 둘러싼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계속되고 있다. 남북관계를 개선해 북미 간 협상을 견인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제재 우회에 따른 한미공조 균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들어 남북은 연내 10개 북한 양묘장 현대화를, 내년 3월까지 소나무 재선충 공동방제를 마치기로 합의했다. 철도ㆍ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 시기는 내달 말~12월 초로 잡혔다. 또 내주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공단 시설 점검을 위한 방북 또한 추진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정부 주장대로 대북제재 틀 안에서 남북협력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고심이 묻어난다. 철도ㆍ도로 연결 사업의 경우 만약 착공이 시작되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75호가 금지하고 있는 ‘산업용 기계류ㆍ운송수단ㆍ철강ㆍ여타 금속류’에 해당하는 물자 이전이 불가피하다. 이에 정부는 일단 착공‘식’, 즉 물자 반입이 없는 기념 행사까지만 추진한다는 복안으로 상황을 돌파하고 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도 마찬가지다. 영리 목적인 개성공단의 재가동에 앞서 시설 복구 단계로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물자가 오가지 않는 관계자 방문은 제한을 받지 않는 영역이다.
다만 산림협력 사업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유엔 안보리 제재는 북한으로의 공급, 판매 또는 이전을 금지하는 품목을 규정해 대량살상무기(WMD) 또는 핵 무기 개발 활동을 제한하면서도, 해당 품목의 반입 목적을 따져 제재 예외를 인정하는 문도 열어두고 있다. 문제는 목적에 대한 해석이 나라마다 다를 수 있어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유엔 제재는 북한 반입 품목이 제재가 금지한 품목분류(HS) 코드에 해당하는지부터 그 목적이 무엇인지까지 해석의 여지가 커 사실상 정치적 타협이 필수적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산림협력의 경우 양묘장 자동온도조절 장치, 방재 장비 등 ‘산업용 기계류’가 포함될 수 있는 데다, 방제 약품 또한 생화학무기로 전용(轉用)될 가능성 때문에 반입이 차단될 수 있다. 반면 대북제재 결의가 예외를 두고 있는 ‘인도적 지원’(2397조 25항)에 해당되거나, ‘비상업적이고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공공인프라 사업 등 합작사업체의 경우 위원회 승인 절차를 거친다면 설립ㆍ유지ㆍ운영될 수 있다’는 조항(2375조 18항)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이처럼 대북제재 논란 줄타기를 마다하지 않은 것은 지난 9월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사례에서 얻은 학습효과도 있는 것 같다. 당시 연락사무소의 제재 위반 논란이 일었을 때도 청와대는 대북제재 결의와 연락사무소 설립이 북한 비핵화 추동이라는 목적을 공유하기 때문에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논란을 돌파했다.
문제는 제재 예외와 우회를 놓고 미국과 해석 차가 벌어질 경우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 정부 내에서는 평창 올림픽 시기만 해도 한국 정부가 제재 위반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 미국 또는 유엔 측과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쳤는데 최근에는 제재 우회 움직임이 크다는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미국 또는 국제사회를 설득하려면 남북관계의 예외성만 앞세우기보다는 확실한 법적 논리를 세워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성공단 법무팀장을 지낸 김광길 변호사는 “미국은 독자제재뿐 아니라 유엔 제재 등에 있어 법적 논리를 확실히 세운 다음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성향이 강하다”며 “정부도 법 논리를 충분히 갖춘 다음 남북협력을 추진한다면 유엔 제재 틀 안에서도 정치적 합의로 성사시킬 수 있는 사업이 더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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