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세 할머니 A씨는 별다른 소득 없이 서울 동대문구의 월세 25만원짜리 쪽방에 거주하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주거 환경이지만 그는 자신이 주거급여를 받고 있기 때문에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막연히 오해하고 있다.
A씨처럼 쪽방, 고시원 등에 살고 있는 취약계층에게 정부가 먼저 공공임대주택 이주를 권하고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된다. 또 주거지원이 필요한 취약계층이 가정폭력 피해자, 미혼모 등으로 확대되고 공공임대주택 보증금 부담은 대폭 완화된다. 낡은 고시원을 정부가 매입한 뒤 리모델링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정책도 시행된다.
국토교통부는 24일 제3차 주거복지협의체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취약계층ㆍ고령자 주거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고시원, 숙박업소, 판잣집 등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에 대한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마련됐다. 정부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6월까지 시행된 이번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피스텔이 아닌 비주택 거주자는 37만가구(수도권 19만, 지방 18만)으로, 이 가운데 고시원 거주자가 15만2,000명(41.0%)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됐다. 이어 ‘가게 쪽방’과 같은 일터의 일부 공간 및 PC방 등 다중이용업소를 거처로 삼는 사람이 14만4,000명(39.0%), 숙박업소 객실 3만명(8.2%), 판잣집ㆍ비닐하우스 7,000명(1.8%) 순이었다. 비주택 거주자를 소득별로 보면 하위 20%인 1분위 가구가 12만3,000가구(40.7%)으로 가장 많았다. 가구원 수 기준으로는 1인 가구가 71.9%(26만6,000가구)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연령별로는 60세 이상(28.4%)과 30세 미만(23.9%) 비율이 높았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토부는 주거지원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우선 앞으로 주거급여 주택조사를 할 때 주택 이외 거처에 살고 있는 가구를 대상으로 공공임대주택 이주 수요를 직접 확인하고 서류신청부터 주택물색 등의 전 과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고령자, 기초수급대상자 등으로 한정된 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 대상자는 가정폭력 피해자나 출산을 앞둔 미혼모 등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공공임대주택 입주에 걸림돌이 됐던 보증금 부담은 줄어든다. 목돈 마련이 여의치 않은 취약계층 입장에선 500만원 수준인 보증금이 큰 부담이다 보니 입주를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정부는 주거급여 수급자를 대상으로 무보증금 월세(매입임대 대상) 또는 2년간 보증금 분할 납부제(매입임대, 전세임대 대상)를 도입하기로 했다. 내년 상반기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일부 공공주택 사업자에 시범적용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주거안정월세대출 대상에 주거급여 수급자도 포함한다. 연 1.5%의 저리로 월 40만원까지 총 96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전세임대 1순위 자격에 차상위계층 고령자 가구가 추가되고, 도심 노후주택을 매입해 고령자 맞춤형으로 리모델링 후 저소득 1, 2인 고령자 가구에 공급하는 공공리모델링 사업도 시행된다.
주거복지 프로그램 접근성도 개선된다. 공공임대는 보통 특정 모집시기에만 신청을 받지만 출산을 앞둔 미혼모 등 긴급 지원이 필요한 가구에 대해선 상시 신청을 받고 3개월 이상 걸리는 대기기간 없이 즉시 입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노후 고시원을 사들여 1인용 소형 주택으로 리모델링해 저소득 가구에게 공급하는 ‘고시원 매입형 공공리모델링’ 사업도 하반기부터 실시할 계획이다. 김현미 장관은 “취약계층ㆍ고령자 주거지원 방안을 통해 주거지원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주거지원 장벽을 낮추는 한편, 신속하고 편리한 주거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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