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민의 기름값 부담을 덜고 내수를 부양하기 위해 10년 만에 ‘유류세 15% 인하’ 카드를 꺼냈지만, 정작 서민들이 기름값 인하를 체감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세금을 깎아주는 만큼 기름값이 하락한다고 장담할 수 없는데다 실질적인 기름값 절감 혜택도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2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다음달 6일부터 내년 5월6일까지 6개월간 휘발유와 경유, 액화석유가스(LPG) 부탄 등에 부과되는 유류세가 15% 인하된다. 정부는 이 같은 유류세 인하가 기름값에 100% 반영되면 10월 셋째 주 전국 평균 기준 가격은 △휘발유가 리터(ℓ)당 최대 123원(1,686→1,563원) △경유는 87원(1,490→1,403원) △LPG 부탄은 30원(934→904원) 낮아질 것으로 봤다. 예를 들어 매달 120ℓ(연료탱크 60ℓ) 가량 휘발유를 넣는 알페온 차주 김형진(가명ㆍ32) 씨는 현행(약 20만원)보다 기름값 부담이 1만2,500원 정도 줄어든다. 6개월간 7만5,000원의 돈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정부는 향후 6개월간 화물차 자영업자 등 국민들의 기름값 부담이 총 2조원 줄며 ‘가계 가처분소득 증가→소비증가→내수활성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유류세 인하가 곧바로 가계의 기름값 부담 경감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급등하던 2008년 3~12월 유류세를 10% 인하했다. 그러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유성엽(민주평화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 휘발유 소매가격은 2008년 1~2월 평균 1,653원에서 3~12월 1,703원으로 오히려 3% 올랐다. 당시 “유류세 인하 효과를 전혀 체감할 수 없다”는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이유다. 유 의원은 최근 국감에서 “당시 휘발유 값을 분석해보면 국제가격 상승분 만큼 그대로 올랐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유류세 인하분이 기름값에 100% 반영되지 않고 정유사와 주유소의 이익으로 귀결됐다는 이야기다. 정부 내에서도 “설령 유류세 인하분만큼 기름값이 떨어져도 6개월에 7만원 수준인데, 이 정도로 가계가 가처분소득 증대를 체감할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류세 인하의 혜택이 고소득층에 더 많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논란거리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2008년 3월 유류세 인하 후 2분기(4~6월) 휘발유 소비량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는 월 평균 880원의 가격 혜택을 누린 반면 5분위(상위 20%)는 5,578원을 절감하는 게 그쳤다. 상위 20%가 누린 혜택이 하위 20%의 약 6.3배에 달한 셈이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도 “역진적인 측면이 있다”며 “다만 유류세 인하는 가처분소득을 늘려주기 위한 목적이며, 자영업자나 서민일수록 (세율 인하에 따른) 가처분소득 증가비율이 훨씬 큰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주유소ㆍ충전소의 판매가격에 유류세 인하분이 적시에 반영되는지 살필 것”이라며 “최근엔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서비스(오피넷)와 알뜰주유소 도입으로 주유소간 가격경쟁이 확대된 만큼 2008년보다 가격인하 효과는 클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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